봄밤 의 노래.

쎄시봉 친구들.

홍률 2011. 5. 1. 14:03

 

 

 

 

                                                            

                                                                                                                                   

이미지 / 캡처

 

봄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토요일 저녁

봄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물안개 같은 운무가 피어올라 파릇한 초록이 돋는

그런 봄날의 봄비와 봄밤은 아니었습니다

 

봄밤, 줄기차게 내리는 비

전날은 천둥도 울리고 벼락도 때렸습니다

그런 날의 오후, 하염없이 찾아드는 그때와 그 시절의 사람들은

윤형주의 말처럼 50대와 60대 초반의 소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잊혀 가도록 활동이 없었던

노래와 얼굴들이었습니다

 

 

67년 무교동

 

ROTC 작업복을 입고 사회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상벽]은 펑크 낸 가수의 대타로 손님 중에서 노래 잘하는 사람을 찾던 중 좌석의 한쪽에서 검은 장화에 염색한 검은 군복을 입은 괴죄죄한 젊은이를 보게 되었으며 그는 한사코 고개를 숙이며 하 ㅡ, 하 ㅡ, 를 되뇌고 옆의 일행은 발로 허벅지를 차며 어깨로 그를 밀쳐내고 있었다 그가 노래 좀 한다는  [조영남]이었다.

 

자취생이었던 이상벽은 자취방에 찾아드는 또 한 사람 [송창식]을 아르바이트로 출연시키고 일주일 후 [윤형주]도 아침이슬 같은 맑고 고은 청량함을 쎄시봉에 선사시킨다 윤형주보다 9개월 늦게 태어난 [김세환]이는 항상 막내이고 귀염둥이이지만 순수한 열정은 악동 이다지 금까지 다른 이는 아니어도 김세환에게 윤형주 본인이 형이라 부른다.

 

술도 없고, 주스 한잔에 빨려 드는 주옥같은 선율과 통기타의 매력은 쎄시봉을 그 당시 젊은이의 공간으로 창출했다 일 년 반만의 아르바이트 기간 동안 이상벽은 몇몇의 젊은이들을 더 만나게 되고 그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노래하고 익살 부리며 세인들에게 추억을 들쳐 내주고 있다. [이장희]가 그렇고 [양희은]이 있었다 [윤여정]도 있었다고 했었지.

 

 

유독 비의 노래를 많이도 불렀고 비를 좋아했던 윤형주는 이 밤도 비의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좌중을 압도하는 입담은 이상벽 못지않은 재치이고 독설가 이기도 하며

맑은 음색은 여자를 좋아하는 조영남이보다도 더 여자 팬이 많고

나이 든 소녀들의 우상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대비되는 목소리 건축 토목 공학 도출신 [이익균]씨도 봄비가 내리는 봄밤을 같이했습니다.

 

귀염둥이 김세환이도 환갑을 넘기 우고

모두가 휴면기일 때 그는 달랑 통기타 하나 메고 전국을 방랑했었습니다

고독한 순교자

고집스러운 그는 이제 악동의 그늘에서 벗어나 형(?)들과 만나고 무대는 그의 잔치가 되었으며

언제나의 경쾌함은 순수한 열정이고 해맑은 소년 다움 일 것입니다

 

고구려 옷을 즐겨 입는다는 송창식,

윤형주가 그렇게 소개했지만 부여족의 옷도 고구려의 옷도 아닌  개량한복일 따름이었습니다

경기도 어느 냇가 퇴촌에서 낮을 밤 삼아, 밤을 낮처럼 자정이면 점심을 드는 노래하는 촌로!

그의 웃음은 바보이고 담배가게 아가씨는 첫사랑이었을까요

고래잡이 떠나는 시대, 뒤안길의 젊은이는 으다다닷 가나다라의 맞수이며

불 꺼진 창의 그림자는 행복한 남자와 여자의 그립고 애절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기타 [함춘호]의 소개는 기인의 아껴둔 언어였으며 어찌나 말을 아껴하는지

어쩌다 하는 한마디가 몸짓만큼이나 둔중하지만 성량만큼이나 우렁차지는 않았습니다.

 

너무도 오래 잊혀 있었습니다.

그사이 국적도 없는 언어와 이해하기 힘든 단어는 기계음의 음률에 섞이어 무척 이도 힘들게 했습니다

봄비가 내려도

소나기가 세차도

천둥이 치고 벼락이 울부짖어도 쎄시봉의 친구를 찾아들 것입니다

아니 그 시절의 노래와 얼굴과 그때의 내 옆 연인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봄비가 내렸던 좋은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