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일왕의 항복문

홍률 2014. 8. 20. 02:42

 

 

오늘날 세계의 대세와 우리 제국이 처한 조건을 깊이 숙고한 결과 짐은 비상수단에 의지해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노라.

짐은 우리 정부에 공동선언 조항을 수락하기로 했다는 뜻을 미국, 영국, 중국, 소련 정부에 통고하라고 지시했다.

우리 백성의 안전과 안녕뿐만 아니라 만국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 황실에 대대로 내려오는 엄숙한 의무인바 짐은 그 의무를 마음 깊이 새기고 있노라.

실로 짐은 일본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진심 어린 바람에서 미국과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을 뿐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영토를 확장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은 근 4년을 끌어왔다.

그동안 짐의 육군과 해군은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웠고, 국가의 종복은 근면을 아끼지 않았으며, 짐의 1억 백성도 섬김에 소흘함이 없었다. 다들 최선을 다해왔으나 세계의 대세 또한 일본의 이익과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더욱이 적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폭탄을 새로이 사용해 무고한 생명을 무시로 빼앗기 시작했으니 그 피해가 실로 어디까지 갈지 헤아릴 수 없구나. 이 이상 교전을 계속한다면 일본 한 나라의 파괴와 소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의 절멸로 이어질 것이니라.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짐의 1억 백성을 구할 것이며, 또 무슨 낯으로 황실 조상님들의 신위를 뵈옵겠는가?

이것이 짐이 정부에 열강의 공동선언 조항에 응하라고 지시한 연유다.

짐은 제국과 합심하여 시종 동아시아의 해방에 힘써온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에 심심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에서 다쳤다거나 제 본분을 다하다 죽은 장교와 사병뿐만 아니라 그 유족을 생각하면 짐의 가슴은 밤이나 낮이나 고통을 가눌 길이 없다.

짐이 가장 염려하는 바는 부상자와 전쟁 피해자, 집과 호구지책을 잃은 사람들의 후생 복지다.

금후 제국에 닥칠 고난과 시련은 분명히 녹록지 않을 것이다.

짐은 그대들, 짐의 백성들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짐은 시운의 지시를 받아드려 어차피 불가피하다면 아무리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라 해도 인고하고 또 인고해 만세에 태평성대를 위해 길을 닦기로 다짐하였노라. 지금 까지도 제국의 근간을 구하고 유지해 온바 그대들의 한결같은 충정을 믿기에 짐은 항시 그대들과 함께 있다.

행여 감정이 격발해 공연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형제끼리 의견이 달라 갑론을박하며 소요를 조성해 정도에서 벗어나 헤매다 끝내 세계의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라.

각자 책임이 막중하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명심하고 신령스러운 땅의 불멸을 항시 믿으며 세세손손 한 가족으로 지내라.

정직하고 고결한 품성을 도야하며 굳은 의지로 밀고 나가 제국의 영광을 드높이고 진보하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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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도가 발표한 항복 문이다.

비겁하고 오열하며 파렴치한 비양심적인 책임전가의 선언이며 세계와 일본 민들에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항복 문에 [항복]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진심 어린 바람에서 미국과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을 뿐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영토를 확장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라고 한 구절은 이미 자국의 전쟁수행을 도운 일본 민들이나 주변의 침략당했던 국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거짓말을 한 것으로서 일왕의 명예와 권위는 시궁창에 쳐 박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짐은 제국과 합심하여 시종 동아시아의 해방에 힘써온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에 심심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동아시아의 전쟁 침략국에게, 그 국민들에게, 항복 문에서 용서를 구한다는 반성의 말은 한마디도 없다. 후일 일본의 사죄가 이 유감 한마디로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이 항복 문은 일본 정치인과 일본 민들의 교육헌장인 셈이다.

 

이미, 항복 문이 발표되기 보름 여전 연합군은 항복하기를 권유했고 군부와 정부는 그 뜻을 강력히 일왕에게 올렸다.

그러나 일왕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패전의 책임을 일왕인 자신이 지기 싫었던 까닭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일왕의 왕가는 지속되어야 하고 정부와, 국가와, 신민은 그다음이었다.

일왕과 군부는, 또 정부, 역시 마찬가지로 항복하지 않으면 일본 본토 어딘가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일왕 자신이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동안 시간을 낭비하여 히로시마에 원폭이 있었으며 일본 민들의 처절한 죽음이 군부와 일왕가에게 전해졌다. 그래도 일왕은 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나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무엇인가 해답을 찾으려, 2차 공습을 인지 하면서도 결단을 하지 않았다.

 

나가사키에 2차 원폭이 있었다.

그리고 해답을 찾았다. 전쟁의 책임은 자신이 아닌, 그러니까 항복의 조건은 자신이 아닌 많은 인명을 앗아간 폭탄에 있다는 논리였다.

‘더욱이 적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폭탄을 새로이 사용해 무고한 생명을 무시로 빼앗기 시작했으니 그 피해가 실로 어디까지 갈지 헤아릴 수 없구나. 이 이상 교전을 계속한다면 일본 한 나라의 파괴와 소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의 절멸로 이어질 것이니라’는 말에서 항복하는 것이 전쟁을 일으킨 일왕 자신에 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의 절멸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항복한다는 것이다.

 

그래 놓고 겁이 난 일왕은 전쟁의 패전 책임이 소요로 일어날까 봐 (두 차례의 원폭 책임도 함께) 문서 말미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일본 민들을 다독이는 말로 그리고, 패전 이후의 일본의 상황에 대해 어떤 길을 제시하고 있다.

‘금후 제국에 닥칠 고난과 시련은 분명히 녹록지 않을 것이다’

‘각자 책임이 막중하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명심하고..........’

일왕은 항복 문을 통해 반성과, 용서와, 책임을 회피함으로 인해서 일본 정치인과 일본 민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지금 일본의 태도나 앞으로도 일본 정치인들은 절대로 사죄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의 종군위안부나 중국의 난징학살에 대해서도 망언을 계속할 것이다.

 

태평양전쟁의 전후 재판이나  일본에 대한 미국의 역할, 한국 정치 위정자들이 일본 해바라기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친일행적을 단죄하지 못하고 머리 숙이며 꼭두 노름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왜, 일본은 독일처럼 반성하지 않는 걸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를 이 일왕의 항복 문에서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