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률 2015. 6. 20. 13:37

 

 

 2014. 11. 11

 

 

 

 

간 장소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감사함과 생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긴다.

 

 

 

 

 

1년 전 이맘때.

간성혼수로 보름여의 기억이 전혀 없는 상태로 깨어났다가 그 이후

가끔은 무의식의 기억으로 떠오르는 풍경이나 사물, 또는 사람들이 있다면.

 

 

 

 

 

두산리의 10월 단풍과

모든 것이 노란 색깔 속의 병실과 긴 복도

이동하는 침대 그리고 휠체어

울성 거리는 말소리

반복되는 이름과 날짜와 장소의 간호사 질문.

 

 

 

 

 

손을 꽉 쥐며 말없이 바라만 보던 가영이

끝 간데 없이 나른하면서 기분 좋게 하던 노래들

온몸을 소독으로 닦으면서 눈시울을 붉히던 아내.

 

검붉은 공간 속에서 팔을 뻗어 온 힘을 다해 손바닥으로 막아내며 들어서기를 거부하던 알 수 없는 세계.

청아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던 큰누님의 다정한 목소리.

 

그리고 중환자실의 침대 위 내 모습

창밖의 단풍

떠오르는 두산리 황정길 위의 오후 햇살에 내 비치는 수직의 빨간 적송목

긴 잠에서 깨어나듯 그 순간은 알 수 없었던, 안도하며 기뻐하던 아내와 가영이의 밝은 얼굴.

 

모두가 1년 전의 기억이며 오늘,

밖을 보며 애잔하게 피어오르는 무르익은 가을의 향취를 본다.

 

간이식이나 수술을 하는지도 몰랐던 그때의 상황이 희미한 편린으로 스크랩되는 지금,

영진이에게 고맙고 아내와 가영이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

 

이렇듯 또 한 번의 단풍과 가을이 오듯

앞으로도 이어질 수많은 단풍과 가을의 추억들이

숲 속의 쌓이는 낙엽들처럼 두터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