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

감사한 마음으로

홍률 2018. 7. 8. 16:57

 

 

 

2018. 4. 23

 

 

 



정작 곡우날에는 내리지 않던 곡우 비가 오늘은 차분하고 예쁘게 내리고 있네요.

곡우는 농사비라 하는데 어릴 때 기억으로 볍씨를 담그고 논에 못자리 물을 채웠었는데
못자리 귀퉁이에 미나리깡을 만들어 재를 뿌리고 미나리 어린싹을 이식하던 모습이 선합니다.

이때쯤이면 양포에 멸치배가 와서 멸치젖을 담그고 통명을 조려 먹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도 맛있게 먹었지만 갑오징어의 뼈로 배를 만들어 못자리 고랑에 띄우며 놀았던 추억이

달마산 동백꽃 만큼이나 오늘 내리는 곡우 비로 더욱 새록새록합니다.

 

 

 

 


달마산 도솔암 부근에서 내려다 보이는 땅골의 들녘과 설 둥, 곤포, 그리고 굴 앞의 밭들과 소나무 우거진 동산의 풍경입니다.
연 추도가 보이고 완도 삼두리 끝자락이 그림처럼 떠 있습니다. 아름다운, 눈에 익은 정겨운 바다입니다.


 

 

 

 


달마산 자락의 어느 이름 모를 산꽃입니다.
바람 단지의 한가운데 낙엽진 수풀 속에서 하얗게 피어난 한송이 꽃, 당신만큼이나 곱습니다.


 

 

 

 


정유재란으로 왜병에 의해 소실되어 돌담의 담벼락과 터만 남아 있던 역사 깃든 도량인 도솔암을 영전 출신의 법조스님이 복원하여 수도, 정진하고 있습니다.

달마산은 백제 왕인박사의 수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왕인박사는 영암사람이라 하였으니 북평면이 옛적에 영암 시종면이었다 하니 그 수도처로 도솔암도 추측해 봄 즉합니다.

법조스님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가에 귀의하였으며 재영이 동생으로 속세의 이름은 재상이라 합니다.

영전 출신으로 또 한 분의 스님이 현존하시는데

도문스님으로 조계종 재무 국장직을 두 번에 걸쳐서 역임했으며 서울 종로 조계사주지직을 역임했습니다.

지금은 스님이 불가에 입문한 양산 통도사에 머물고 있습니다.
재권이의 동생으로 속세의 이름은 재준이라 합니다.


 


애초 서울에서 출발할 때 멀 매들의 숫자가 적어 걱정도 많이 하였으나 막상 도착해보니 감사한 분들이 많이 찾아오셔서 매우 흡족한 밤이었고 여행지의 풍광 좋은 아침이었습니다.

찾아와 주신 모든 분들께 우리의 밴드를 함께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지면을 통해서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손수 악기를 챙겨 오셔서 함께 즐겨 주신 미자 신랑님,
미자 동생과 신랑 성관님,
홍어와 막걸리를 가져오신 조합장 여영식 님,
선배이신 정천, 회선형,
장어를 가져온 상훈 동생 용암, 광호 형제분,
밤늦게 방문한 강동일 님,
고향에 가면 항상 고마운 영남, 현진 님,
늘 행복하세요.

아침, 숙소의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이는 추억의 바다가 그리 좋았습니다.

어릴 적 떡 해서 노 젖고 봄나들이 갔던 꽃섬 화도,
밥해 먹으면서 해우 포자 제발 부착했던 백일도,
음지갖이어서 늘 검게 보이던 흑일도,
가끔씩 생멸치배로 양포를 찾았던 횡간도,
넘어 넘어 섬 꼭대기만 보이던 노화도, 소안도, 넙도의 시선이 머무는 푸른 바다가 정말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유근이네 동네 사구 리도 그대로고
통호의 주산, 중대 골의 팔선봉도 정겨웠습니다.
십자혈로 이름난 중대골 끝자락의 돌아가는 산봉우리, 바다와 맞닿은 석양은 아름다운 팔선녀의 깔아놓은 옷자락 같았습니다.

예전에는 스쳐만 갔던 언덕배기,
한 맺힌 '물새야 왜 우느냐'의 노래 주인공
영춘네 아버지 멸망이 눈 아래 보이는 그곳,
할아버지 산소에 오면 한 컷으로 보았던 그 그림을 다시 볼 수 있음에 행복한 아침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행복합니다.
봄날에 먹는 묵은지와 묵은 갓 지, 묵은 파지는 세월의 변하지 않은 선물입니다.
누구의 된장인지는 몰라도 난 생선회를 된장에 먹었습니다. 고소하고 감칠맛이 나거든요.
고춧가루 소금장에 홍어애의 달큼함은 우리들의 기쁨이었습니다.
정말 모든 게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완도 서부길을 가면서 느끼는 생명의 환희는 예전에는 와닿지 않았던,
지금이니까 가슴으로 오는 계절이 주는 선물이고 자연의 순리대로 소멸하고 생성하는 고마움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버스로 일주하는 완도 서부길과 신지도를 지나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고서 잠시나마 유해가 안장되셨던 이순신 장군 영혼의 섬, 고금도를 지나갔습니다.

 

 

 

 



신지도는 '동국진체'를 완성 한신 원교 이광사 선생님의 유배지 이기도 합니다.
한 맺힌 3대에 걸친 유배를 겪으셨지만 3대에 걸쳐 우리 역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기신 집안도 드물 것입니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의 현재 서체가 동국진체인데

유학파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길에 대흥사를 들려 현판을 보고서 친구 초우 선사에게 중원에 없는 서체라 하여 현판을 내리게 하고

한때는 이광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그 비판 때문에 동국진체와 이광사는 더욱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후 세한도의 내용처럼 혹독한 8년의 제주 유배를 마치고 귀경하면서 초우 선사를 만나 이광사의 현판을 다시 걸게 했습니다.

그게 지금의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입니다.

이광사의 동국진체는 전남의 여러 절, 여러 곳에 그 현판이 걸려 있으며

지리산의 작은 암자, 하동의 쌍계사까지도 동국진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해동성국은 조선이라 하였으니 동국진체는 조선 진체이며 우리의 서체입니다.

 

 


고금대교를 지나 강진 마량에서 숨을 고른 뒤 장성으로 가 점심으로 떡갈비를 먹었습니다.
원래는 장성 떡갈비집에서 먹으려 했으나 일요일 휴무여서 화정 돼지떡갈비를 택했습니다.
부실하기는 했으나 모두들 만족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귀경길,
피로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영전을 앞 주에 갔다 온 후라 쉴까도 했지만 불참자가 많아 동참했는데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까매진 얼굴로 친구들 보기가 미안하고
어울리지 못한 현장감이 너무 싫기도 합니다.
혈관을 따라 흐르는 독성이 이제는 정말 싫습니다.
적혈구의 죽은 사체가 온몸을 너무 가렵게 합니다.
그렇지만 동무들이 좋습니다.
많이 다니지 못한 여행길이 너무 좋았습니다.
행동이 정체되면 사고도 정체됩니다.
생각 없는 감성은 기억밖에 없으니까요.
맴돌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곡우 비가 곱게도 내려주고
봄비 맞으며 점심도 먹으려 갔다 왔습니다.
봄비 들으며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번 여행길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