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쉼터

홍률 2018. 10. 6. 22:02

 

 



2018.9. 25

 

 

 


어제는 외출을 받아 가락몰로 가 저녁식사를 했다.

명절이라서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작정하고 나왔는지 해산물의 선도는 좋았다.
다만 식당이 두어 군데밖에 열지 않아서
손님은 기다리고 주방과 서빙의 손길이 부족하여 아예 손님들이 셀프로 가져다 먹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는데 명절이라서 그런지 불상사는 없고 주인이나 손님들이 그러려니 하고 계속 로테이션되는 게 우습기도 했다.

생선회를 먹으러 갔다가 전어와 생새우가 크고 싱싱해서 흔히 먹는 회대신 그것들을 선택했는데
부산 사람인 아내는 붕장어 회를 곁들여 왔다.
뼈째 썰어서인지 달짝지근하니 일품이었다.

작품은 매운탕이었다.
전어와 새우, 아나고여서 부산물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식당에서 오늘은 별도로 매운탕을 해줄 수 없단다.
그래서 아내가 두말없이 나가더니만 서더리와 장어머리를 들고 와 주방으로 들이밀었다.
그게 끝내주었다.

신혼 때 부산 토성동에서 살았드랬다.
자갈치시장이 가까워 시장에 가면 공짜로 장어 머리와 껍질을 얻어와 우리 골목의 인기탕이 되었는데 그때는 붕장어 회가 유행이었고 부산에서는 장어 부산물을 먹지 않았었다.
그걸 내가 사더라도 해달라 해서 먹었는데 앞집의 영주네 멤버들에게 술안주 1등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어찌 됐든 유쾌한 저녁식사였고
나름으로는 넉넉한 한가위였다.


 

 

 

 

 


어제처럼 햇살은 영글은데 잔가지가 흔들리는 정도로 산들바람이 좀 스산하다.
원내를 한 바퀴 돌아 햇볕을 쬐고 쉼터를 찾는데 앉을 곳이 모두 그늘져 있다.
길 건너 소공원으로 갈까 하다가 주사 받침대를 끌고 길 건너기 싫어 실내로 향했다.

어제는 꽉 찼던 좌석들이 오늘은 한가로이 비어있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사 맞는 시간까지는 30분 정도 남았다.

지나온 길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나는 목수였다.
대패질도 톱질도 제대로 못하는 목수!
그렇지만 설계도만 있다면 땅을 파고, 터를 닦고,
구조물 세우는데 뒤서라 하면 서러울 만큼 자신이 넘쳤었다.
한창일 때, 지금도 내로라하는 건물들의 현장을 다 경험했고 건강 때문에 가끔씩 다른 일을 했지만 현장은 삶의 희열이었고 패기의 정점이었다.

목수는 예술혼이다.

숫자에 민감하여야 하고
정확성의 예리함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적산의 소수점 이하 두세 자리에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선택한다.

선과 점, 원의 논리를 이해하고 응용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아름다운 미가 창출될 것이다.

수평과 수직은 정직함에서 온다.
구조체를 영구히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은 양심이다.

동선과 실내 구조는 경험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연륜이다.
또한 실내의 미학은 깊이이다.

마지막으로 목수는 술이다.
술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야기는 집이 되고 사람이 된다.
현장의 공기는 돈과 직결되며
작업자의 결집과 팀워크는 결과물의 척도이다.

꿀같이 달콤한 밤이 있고
짖누루는 작업의 새벽이 있다.
문학의 감잎을 바라보기도 하며
천둥번개의 노래를 찾아 불사르기도 한다.
포근한 달빛이면 술잔을 든다.
그게 살아있는 영혼인 것이다.
목수의 술.

지금은 모든 게 잠들고 허물어져 허접한 빈 몸뚱이로 주시하는 눈길만 남았다.

잠시 쉬어가는 쉼터!
이제 그런 자리에 익숙해져야 하고
진정한 내 자리를 위해 무언가는 해야 하는데
하는데
........

30분이 쉬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