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간호
2020. 7. 23
아차산 밑 광나루길 인근 카페에서 바라본 한강과 야경입니다.
울적할 적이면 가끔씩 찾아가 고구려 온달장군의 전래동화를 유추하며 한성백제 옛 터전을 바라보면서 온조가 어머니 소서노를 죽이고 형 비류를 피해 안착했던 그 당시에는 거대한 땅이었을 위례와 송파, 천호지구의 개발되지 않았을
천혜의 땅, 자연 상태의 한강 유역들을 그려봅니다.
또한, 너무나 좋아하는 시인 박목월의 '나그네'도 되뇌곤 합니다.
나그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그렇게 한참의 위안을 받고자 할 때, 그리고 휴일이면 도심을 벗어나 바람을 쏘이고 싶을 때
가족과 같이 찾던 곳입니다.
푸르고 아름다운 생의 환희는 늘 병상의 절망 속에서도 갈구하고 추구하는 어떤 빛이었습니다.
열이 40도를 넘고
간숫치가 3000을 넘기며
두통이 골을 빠게고
오한이 들며
온몸의 근육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처지며 찢어지는
거부 반응이 찾아들 때면
저승사자도 반가울 지경으로 의식 없는 깊은 나락에 빠져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일어서야 했습니다.
이기려고 몸부림치기보다는 의미 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것이 싫었습니다.
시름시름 앓다가 시들어지는 것보다
어느 날 갑자기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쏴하고 떨어지는 생을 원하지만 그때는 정말 아니었습니다.
병원 두 곳에서 (서울 삼성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5년여에 걸쳐 30번 이상의 수술과 시술을 받고 중환자실도 몇 차례
거치면서 고통이 온몸을 짖눌을 때는 쏜살같이 도 내리 꽂이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부리와 사나운 발톱의 공격이 되어 내 의식 속의 두 마음은 그림자 되어 싸우곤 했습니다.
포기할 것인가?
견뎌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결국은 착한 환자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아내의 시름을 알기에 가능하면 병원에 오지 않도록 애썼으며 늘 찾아오는 가영이 앞에서는 항상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여 서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고맙고 감사한 건 내 가족이지만
새벽의 병상 커튼을 젖히며 소곤소곤 히 말을 낮추며 주사를 놓고 약을 먹이며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시던
천사 간호사들입니다. 그들은 하루 24시간의 수호자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고 싶었습니다.
오늘 낮에는 미자가 전화를 걸어와 그의 심경을 내 비쳤습니다.
젖어 있는 목소리였습니다.
밴드에는 높은 곳에서 찍은 그네 집 아파트 마당 주차장의 전경사진과 술을 먹고 싶다는 의미심장한 메모를 남겼네요.
그네처럼 강인한 친구가 힘든가 봅니다.
내가 술을 먹는다면 달려가고 싶지만 나와 둘이서는 낮의 밴드를 보고 통화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아 침묵하고
말았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영신
미자
은심
당신들의 하루하루와 심정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낙담하지 마시고 본인들의 건강도 챙기세요.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고요히 있고
나의 생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나의 조상은 나에게
하늘의 시간 천세(天歲)를 살라하고
하늘의 나이 천세(天世)를 살게 하시리라.
병간호는 환자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의 생활이어야만 서로에게 평온해질 겁니다.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그러하니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수(壽)는 하늘이 정해 준 것.
어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맞이하는 것.
그걸 두려워해서야 올바른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다행히 하루 다섯 차례 약 시간이어서 감사하다.
두 차례가 빠진 것도 큰 진전이다.
한 가지라도 투약하는 종류가 빠졌으면 하고 건강 챙기기에 열심이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