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적봉
2020. 10. 4
무주 덕유산 리조트
설천으로 접어들어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을 향하여 아침을 깨웠다.
날씨는 화창하지 않았으나 선선한 기운은 움직이기 좋았고 산의 정기도 무르익어 이제 다가올 단풍의 옷 단장을 위하여 산내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멀리 숲속에 파묻힌 리조트의 전경이 아름다워 사진의 구도를 잡는데 날씨 때문에 렌즈가 선명하지 않아 오늘은 몇 컷의 사진을 건지지 못하겠구나 싶다.
멀리 첩첩히 바라보이는 영봉들이 구름 속에 있고 하늘에 맞닿은 무수한 봉우리들이 앞뒤로 손짓하고 있다.
명절이고 연휴 기간이지만 콘도리조트들은 텅 비어 인적없이 한적하다.
코로나의 여파가 산속에 까지 미치웠고 정부는 정책적으로도 여행을 자제하였는데 그것에 따르지 않은 우리가 미안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행길에 나선 것을 굳히 변명하자면 도심 속에서 갑갑하게 연휴를 보내느니 차라리 산속, 호젓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딸아이 차례상을 치르고서 서울을 떠났는데 막상 와보니 잘 왔다 싶다.
사람은 뜸하고 식당도 붐비지 않으면서 콘도리조트 또한 한산하여 방역수칙을 잘 따르면서 안전한 휴식을 취하니 너무나 좋다.
코끝으로 전해지는 풀꽃향기가 아침이슬에 묻혀 싱그럽다.
꽃은 마음의 평화이다. 원색으로 무리진 꽃밭이 시선을 붙잡고 강열한 색상이 그 여히 유혹한다.
설천봉(1,522m)을 향하여 곤도라를 탔다.
밑에서 올려다 본 정상은 구름 속에 덮여있고 붐비지 않은 산행객들로 인해 순서가 바로바로 다가왔다.
정상쯤에 다다르니 이제 갓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을 만날 수 있었는데 곱고 화려하지는 않았다.
설천봉 주변의 주목나무들이다.
홀로이 또는 두 세그루씩 운무 속에 서있는 모습들이 애처로워 사진에 담았는데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나무이다 보니 그 자태가 실로 꿋꿋하다.
*
주목은
천령天嶺(하늘재)의 바람과 비,
태양과 별을 껴 안으면서
천둥의 소리로
영봉의 신들과 놀았을까?
달 빛 괴괴한 밤이면
천년의 정령들이 그들을 깨우고
그들과 입맞추며
이슬 내린 잎새들로
반짝임을 더 했으리라
아 ㅡ
고적하여라
영산의 주목들이여
설천봉 휴게소 지나
향적봉(1614m)
정상으로 가는 길에 물들어 반기는 단풍이 길동무되고
외로운 한 그루 주목에 정 많은 부부는 이웃이 되어준다.
하늘이여
하늘이시여 ㅡ
열리는 지상의 자비를
풍기는 지상의 인정을
온화한 지상의 감싸는 마음들을
굽어 살펴보소서
덕유산 정상 향적봉
운해 雲海
구름바다 그 오묘한 신비
밑에서 볼 때는 정상을 가리더니
올라와 맞닥뜨리니
파도처럼 이리저리 휘몰아쳐
아래는 안개비만 열리었다
천령의 산죽은 군락을 이루고
갈바람 얼굴을 스치는데
덕유산 준령들이여 모습조차 없구나
숨기고 갇힌 산봉우리들
그 준수한 모습들을
구름바다 깊은 신비에
언제나 헤엄쳐 나오려나
혹시나 내 돌아서면
그때서야 내밀는지
그렇다면 내 서운한 맘
어디 가서 달랠고 저
피웠습니다
수줍게도 피워나 살짝
풀잎 속에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이곳은
하늘 맞닿은 향적봉
남몰래 그린 님 있어
혼자서 부끄러워
동무랑 둘이서 왔답니다
동무는 저만큼
벗 마중하시고
나는야 요기서
내님을 기다릴게요
그런데도 안 오시면
다시금 피어
내 향기 바람에 띄워
그대 곁에
달빛으로 비추이겠습니다
그대
단풍이 빨갛기 물드는 계절이면
야속이 도 뿌리치지 마시고
나를 보려 한 달음에 달려오세요
굽이 굽이 첩첩 히
내밀하게도 휘몰아치면서 그늘진 산속 숲길을 따라
무주 구천동 덕유산을 찾았다
송이버섯 향기로 술잔을 기울이고
선지 뚝배기 얼큰한 국물에 이밥을 말았다
밤마다 숙소에선 술병이 쏟아져도
아침에는 사람들이 거뜬히 기운차니
숲 속이 좋긴 좋은 보다
아니 산속의 공기가 그렇게 하는가 보다
연휴기간 서울에 있었더라면 TV 채널이나 돌리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안 했을 터인데
이렇게 숲 속에 찾아들어 휴식을 취하니
정신도 맑아지고 몸도 기운차니
코로나 시국이라도
한결 기분이 좋다
오래 전의 흔적들이 기억 속에 되살아나고
같이한 동서 자매들이 너무나 좋아하여
가까이하는 것이 형제끼리의 우애도 깊어져
그저 고맙고 감사한 여행이 되었다
다음 달에는 설악으로 가자하니
단풍은 지고 낙엽은 떨어졌을지라도
잎진 가지의 나무숲도
숲 속의 풍광으로 일품 이리라
가는 인생
황혼의 여정이
그래도 우애와 다독임으로 그득하니
지루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