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비가 되어

홍률 2013. 6. 30. 22:05

 

 

 

2013년 6월 22일 토요일 / 음. 계사년 5월 14일(己未日)

 

 

 

 

 

 

 

 

 

 

삼우제를 지내고 다음날 6월 27일 목요일.

운악 청계 333번 길로 접어들었다.

 

20여 점의 애장품과 평소 즐겨 입던 옷가지를 깨끗하게 싸들고 가평 하면 운악산 골짜기를 찾았다.

유품을 지우에게 보내주기 위해서 선택한 곳이었다.

처음에는 영월 두산리를 생각했으나 수미가 날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고민 끝에 운악산으로 향했다.

 

인적이 미치지 않은 곳으로 계속 오르다 보니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는 산그림이 계속 펼쳐졌다.

하얀 바위들이 제멋대로 나뒹굴고,

틈새로 쏟아지는 차가운 물줄기가 웅덩이에 떨어지며 작은 포말을 그리는 한적한 골짜기.

싱그런 녹음이 숲을 이루고 계곡은 고고한 정적이 감돌았다.

 

깨끗하게 세탁해서 잘 다려진 세벌의 옷은 새로 산 속옷과 상, 하의, 셔스, 치마, 양말로 세트를 이뤄 구색을 맞추고

신발, 가방, 지갑, 팔찌, 반지, 화장품, 입술트는데 바르는약등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것을 골라 옷과 같이 했다.

 

홍콩에서 산 인형 [스크럼프]

빅뱅의 CD와 책자, 브로마이드.

작은곰돌이인형.

관절 인형 [미뉴]

미뉴 옷.

코스프레 옷.

천상에서 여행 다니라고 여권.

기술을 인정받은 국가자격증.

 

그 외 몇 가지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나지 않고 우선은 이렇게 보내주었다.

나머지, 진짜로 아이가 기다리는 소중한 소품들은 49제 직전 영전 바닷가에서 보내줄 것이다.

 

맑고 청명한 오후의 운악산 골짜기.

바람도 멈춘 물소리는 귓가를 흘러내리고 있었다.

연기가 하얗게 실처럼 피어오르고,

그 사이로

.

.

.

 

그 사이로,

한 마리 나비가 연기 사이를 하늘거리며 나풀거리고 있었다.

노랗고 검은 점이 박힌 아름다운 나비였다.

산중의 나비.

가영이와 엄마는 통곡을 하고...

 

달밤이면 선녀가 내려와 놀다도 갈 수 있는 심심 계곡. 지우야!지우야 ! 만월이 되면 내려와 놀다가 옷도 갈아입고 온화하고 풍성한 달빛처럼 우리들을 바라봐 다오. 우리도 밤하늘 보며 별이 된 너를 바라봐 줄게. 그래서 서울의 하늘 밑, 분당의 새로운 보금자리 스카이캐슬 황제 2실과남서울대학교 영전 그리고 운악산 골짜기를 달빛 속에 유영하듯 한없이 다니면서 만월이 차오르고 온밤이 다하도록 아름다운 나비같이 너의 나래를 펼쳐다오

,

 

그렇게 빌면서 내려왔다.

 

산에서 나와 도로가 맞닿은 입구에 정갈한 식당이 있었다.

민물매운탕을 시키고 먼저 막걸리를 주문해 마시면서 골짜기의 정취와 한적함에 대해 만족감을 이야기했다.

 

음식이 나오고, 가평의 특산 잣 막걸리병이 몇 개인가 비워갈 무렵,

갑자기 주위가 깜깜 해지며 천둥이 치고 광풍이 일어 땅에 박아놓은 식당 입간판이 넘어지면서

세찬 뇌우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도토리만 한 우박이 식당 입구 데크 위로 소낙비와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주인은 6월에 우박이 내리는 건 5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휘몰아치는 세찬 빗줄기.

어둠 속에서 내리치는 번개의 섬광은 천둥만큼이나 크고 요란하게 번쩍였다.

그랬다.

그런 것이다.

 

지우야! 네가하는구나. 혼자 남겨지는 외로움을 앙탈하고 있는 거지. 빨리 가 버릴까 봐 붙잡는 거야. 그래 그렇게 훌쩍 가버리지는 않을게. 그렇지만 지우야 그만해. 화를 풀어. 너를 보낸 건 모두 내 잘못이야.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하고서 이렇게 너를 떠나보낸 잘못은 다 내게 있어. 너의 심정도 미치겠지. 그래서 울부짖는 걸 거야. 허지만 그만해. 그만하자. 비를그만하자. 달래고, 너를 달랜다. 내 딸 지우야!

 

그랬을까?

그런 것일까?

세찬 빗줄기는 바람처럼 지나가고 하늘이 밝아져 왔다.

주인은 고추밭을 걱정했다.

산은 육중하게 그 자리에 있고 유품을 태웠던 골짜기는 비구름 속에 있었다.

그래서 가야 한다.

이곳을 돌아보지 않고 너도, 우리도 각자의 집으로 가야 한다.

 

너를 놓아두고 우린 가야겠기에 너도 그만 너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가야만 해. 분당 스카이캐슬 황제 2실. 이제 너의 집이고 너의 세계야. 이곳은 또 다른 너의 놀이터이고 네가 별이 되어 달빛 속에 노니는 곳이야. 이제 가자, 그만 가자. 가자, 너의 집으로....

 

그렇게 나비가 나풀거렸던 운악산을, 비로 깨끗해진 도로 위를 눈물로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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