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68

눈은 내리고

2021년 1월 10일 며칠 전 저녁 무렵에 눈이 내렸습니다. 온통 새하얀 세상이 되어 골목에도 건물에도 나무에도 소복소복하며 포근이 쌓이는 눈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눈이 오는 모습을 많이 봐 왔지만 이렇게 감흥에 젖어 한참을 지켜 봐 주기란 근래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가로등 불빛으로 눈이 내리는 풍경은 먼 옛날을 상기시키며 샘 골목 담벼락 너머 검은 감나무 형체 사이로 아련히 날리는 하얀 눈송이들의 정겨움이 새삼 묻어나 어린 시절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유난이도 우리 어릴 때는 눈이 많이 쌓였습니다. 그렇게 눈이 내리던 밤 구불청 노화도에서 이사 온 금옥이네 작은방에서 모두 이불속에 발을 모아 두고 땅콩과자를 먹으면서 마냥 깔깔대고 까르르 웃으면서도 주제도 없는 이야기에 그냥 좋아했던 그 시절이 그립..

향적봉

2020. 10. 4 무주 덕유산 리조트 설천으로 접어들어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을 향하여 아침을 깨웠다. 날씨는 화창하지 않았으나 선선한 기운은 움직이기 좋았고 산의 정기도 무르익어 이제 다가올 단풍의 옷 단장을 위하여 산내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멀리 숲속에 파묻힌 리조트의 전경이 아름다워 사진의 구도를 잡는데 날씨 때문에 렌즈가 선명하지 않아 오늘은 몇 컷의 사진을 건지지 못하겠구나 싶다. 멀리 첩첩히 바라보이는 영봉들이 구름 속에 있고 하늘에 맞닿은 무수한 봉우리들이 앞뒤로 손짓하고 있다. 명절이고 연휴 기간이지만 콘도리조트들은 텅 비어 인적없이 한적하다. 코로나의 여파가 산속에 까지 미치웠고 정부는 정책적으로도 여행을 자제하였는데 그것에 따르지 않은 우리가 미안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행길에 나..

산천 2022.01.02

적상산성

2020. 10. 2 중추절, 무주로 향하면서 나의 지난 세월 공사현장을 찾아본다는 것에 대한 설렘이 일었다. 적상산은 사면이 충암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적상산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여인의 치마와 같다고 하여 붉을 적(赤) 치마 상(裳)을 써서 적상산이라 불린다. 적상산 무주 양수 발전소 상부댐(적상호 864m고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유산 여러 봉우리들과 무주읍내, 양수발전소 하부댐(무주호)와 하부댐 안의 수몰마을인 유수리를 이주시켜 형성된 마을 전경이다. 1994년 무난히도 더웠던 해이고 내 어머니 그 곱던 어머님께서 흰옷 입고 천상으로 가셨던 년도다. 내가 1년여 동안 무주 양수 발전소 상부댐 준공대비공사에 투입되어 댐 주변 2.3km 도로 축대와 U형 측구, 도로 ..

산천 2022.01.02

꿈으로 오는 한 사람

2020. 9. 19 꿈으로 오기를 바랐습니다. 가끔은 그렇게 기다리면서 정녕 찾아들기를 바랐습니다. 새하얀 웃음으로 바라만 보다가 그냥 돌아 선다 해도 섭섭한 마음이 일 것 같지는 아니한 그러한 한 사람이 깊은 꿈속으로 오기를 바랐습니다. 같이 했던 포근함도 함께했던 짖꿎음도 아련이 꿈으로 다시, 다시금 일렁이면서 어둑한 산기슭 아래 산야초 엉클어진 숲길을 따라 달이 뜬 가을밤 흰 이슬처럼 흔적 없이 젖어들기를 바랐습니다. 꿈으로는 늘 그곳이 동네 까끔의 그늘진 설밑이었고 몰고리 골짜기 또랑 물소리 돌돌 거리는 쉼 바탕쯤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해저녁의 큰 골! 소떼와 같이 빠져나오는 초입인가도 모르겠습니다. 소싯적의 추억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음이 지금도 꿈으로 오는 한 사람을..

범 내려온다

2020. 9. 16 YouTube에서 'Feel the Rhythm of Korea' 보기 https://youtu.be/3p1 Cnw163 lk 가을 물가 한적한 소슬바람이 그립습니다 고추의 붉은 열매 익어가고 휘영청 밝은 달 아래 감잎은 또 물들어 갑니다. 그간 모두 잘 있겠지요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슬도 영롱하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은 옷깃을 여미는데 아직은 한 낮 반팔도 괜찮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요 어쩌겠습니까 세월이 하 수상해 서로가 몸조심하는 것을 모두가 약속을 지키자 하는 것을 요런 시절도 있는 거지요 북한산 자락의 순애도 잘 있고 삼성산 기슭의 병대도 잘 있는지 언젠가는 만나서 얼굴이라도 봐야겠는데 그런 날이 금방 올 것만 같습니다 이렇듯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바람도 바뀌고..

오랜 벗. 2022.01.02

병간호

2020. 7. 23 아차산 밑 광나루길 인근 카페에서 바라본 한강과 야경입니다. 울적할 적이면 가끔씩 찾아가 고구려 온달장군의 전래동화를 유추하며 한성백제 옛 터전을 바라보면서 온조가 어머니 소서노를 죽이고 형 비류를 피해 안착했던 그 당시에는 거대한 땅이었을 위례와 송파, 천호지구의 개발되지 않았을 천혜의 땅, 자연 상태의 한강 유역들을 그려봅니다. 또한, 너무나 좋아하는 시인 박목월의 '나그네'도 되뇌곤 합니다. 나그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그렇게 한참의 위안을 받고자 할 때, 그리고 휴일이면 도심을 벗어나 바람을 쏘이고 싶을 때 가족과 같이 찾던 곳입니다. 푸르고 아름다운 생의..

세상사. 2022.01.02

박원순의 유서

2020. 7. 11 내 딸과 아들에게.. 유언장이라는 걸 받아 들면서 아빠가 벌이는 또 하나의 느닷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제대로 남길 재산 하나 없이 무슨 유언인가 하고 내 자신이 자괴감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유산은커녕 생전에도 너희의 양육과 교육에서 남들만큼 못한 점에 오히러 용서를 구한다. 그토록 원하는 걸 못해준 경우도 적지 않았고 함께 가족여행을 떠나거나 함께 모여 따뜻한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구나. 그런 점에서 이 세상 어느 부모보다 역할을 제대로 못한 점을 실토한다. 가난했지만 내 부모님께서 내게 해주신 것으로 보면 특히 그렇단다. 우리 부모님은 인생의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바치신 분들이다. 다만 그래도 아빠가 세상 사람들에게 크게 죄를 짓거나 욕먹을 짓을 한 것..

사내. 2022.01.01

아버지

2020. 5. 25 신록이 우지 짓는 안성 청룡사 골짜기 5월의 장미가 화려하고 아카시아 찔레꽃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차창밖으로 무수히 스쳐가는 산하 기분 좋은 햇살 온통 짙푸른 천지 노래는 감미롭게 흐릅니다 어느 카페에 들려 산자락 나무 그늘 아래 몸을 맡깁니다 감성으로 물드는 마음을 다독이며 늙어가는 남자의 그림자를 봅니다 하얀 반백의 머리에 거친 살결 병약 힘은 오랜 병고의 산물 세상을 놓아버린 의식의 밑바탕엔 아버지의 고뇌가.... 그래서 해탈의 경지는 어디쯤일까 空공의 안착지는 오랜 생각하는 마음이 사랑이라 했는데 그 헤아림은 털고 일어나니 다시 마주치고 부딪치는 파란 하늘의 구름 그 속에 내가 있더이다

사내. 2022.01.01

오랜만의 만남

2020. 5. 20 인간애가 요구되는 코로나 시국입니다. 모든 활동이 제약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공공의 약속을 지키고자 다소의 불편을 감내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는지 인사드립니다. 햇살은 화사하고 맑은 하늘에는 흰구름이 떠있습니다. 비 온 뒤의 날씨여서 인지 가시권이 너무나 선명해 기분마저 상쾌합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 오랜 벗들이 생각나고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토요일 23일 12시 청계산 신분당선역에서 만나 청계산 주변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오랜만이기도 하지만 요즘 실의에 빠져있는 은심이의 마음도 위로해 줄 겸 그간 소원했던 우리들의 만남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안타까운 소식이 은심이의 부군께서 수차례의 수술을 받고도 아직 사경을 ..

오랜 벗. 2022.01.01

회상

2020. 5. 8 그때 그 어느 봄날 푸릇푸릇한 보릿잎이 껑충 자라 버린 어린날의 배나무 옆탱이, 산꼭대기에서 동네 어머니들이 장구와 북을 치며 춤추고 노래하던 광경을 잊을 수 없습니다. 샘 골목 어머니들이 모여 떡을 하고 안주를 만들어 화려하게 옷 단장을 하고 배나무 옆탱이로 온 동네 부인들이 봄놀이 즐기던 그때도 5월이었습니다. 그날의 즐거워하시던 어머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고 같이 흥겨워하시던 소중한 얼굴,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장구를 치면서 노래하시던 청지골 종표 큰어머니 술을 과하게 잡수시던 청지골 동원형 어머니 우리 마을 제사장이셨던 동네 까끔 당골래 한 씨 아주머니랑 어디서 오셨는지 무지하게 예뻤던 노래하는 소리꾼 여인들 집에서 술을 걸러 내시던 재권네 할머니 떡 하신다고 ..

2022.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