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 19

황정길

2016. 7. 25 ㅣ 황정길 이슬 젖은 달빛이 검은 산 그림자 속에서 차갑게 빛나고 시커먼 산들에 쌓인 밤하늘은 무수한 별무리만이 파랗게 반짝이는데 이루지 못한 잠은 괴괴한 정적으로 풀벌레 소리 쫒고 있다. 운무 속에 드러나는 골짜기 안개는 빠르게도 능을 오르고 장대비처럼 내리 꽂히는 수직의 백양나무 새벽의 습한 바람과 맑은 공기 속에서 선명한 자태를 드러낸다. 눈 들어 바라보는 골짜기의 황정길 붉은 수직의 선들이 산허리를 꿰차고 있다. 항상 보아도 변함없는 친근함, 계절이 바뀌고 숲이 옷을 바꿔 입어도 속삭이는 물소리와 하얗고 붉은 원근의 수직들은 평온함을 안겨준다. 남치 악의 산령을 넘으면 신들의 숲인 신림 그곳엔 허 무러 저 가는 돌담이 멋진 카페 [비 흘림]이 있다. 일부러 옛스러이 막 쌓아 ..

고적. 2017.03.04

오후

2016. 4. 2 ㅣ 오후 화분의 꽃들이 색색으로 전해집니다. 봄은 꽃이련가 꽃이 봄이련가 나른한 화사함이 밴드 속에 있습니다. 떨구고 일어나자 합니다. 10층에서 내려다 보는 지상의 봄은 노란 개나리가 피어있고 하얀 벚꽃이 붉게 머금은 봉오리를 터뜨려 갓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백목련이 뒷편 공원에 유일하게 도드라집니다. 내려가자 합니다. 마음이 그렇습니다. 동산을 올랐습니다. 햇살이 잎도 없는 나무숲을 내리꽂습니다. 서성이는 산책객들이 느리게 움직입니다. 햇빛가리개가 있는 벤치에는 젊은 부부가 눈만 마주 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젊은데... 옆 병실의 중동 여인이 비둘기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눈이 깊고 커다란 조그마한 여인이 어머니를 간병하는데 늘 지극정성인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은 화창..

고적. 2017.03.04

입동이 지났단다

2015. 11. 19 금년 겨울은 눈이 많이 올 거라 한다. 두 거인, 두 세력이라고 해야 되나? 시베리아의 거대해진 한랭기류와 서태평양의 슈퍼급 엘리뇨가 하필이면 한반도상에서 자주 부딪쳐 눈 구경을 많이 하겠단다. 지금의 비도 엘리뇨 영향 탓이라고 하니 입동 이후로(11.8) 비 구경은 많이 하고 있다. 다행히 곡식도 다 거더들이고 과실도 수확한 이후의 비라 가뭄 마당에 탓할 것도 없지만 그렇지 못한 곶감농가는 또 근심인 모양이다. 연중, 그래도 한가한 입동 무렵의 어릴 때를 생각해 본다. 탈곡과 보리갈이도 끝나고 건장이나 매면 될 시기. 탈곡 끝에 남은 부검지를 날리고 집집마다 양포 갯짝기로 나가 김장배추 씻어와 물 빠지게 손보거나 김장을 하고, 건장 나람 엮니라고 한가하니 겨울나기 준비하며 잡일로..

고적. 2017.03.01

비오는 도심

2015. 11. 8 비가 내립니다. 비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겐 반가운 비입니다. 그러나 스산하네요. 창밖으로 내리는 가을비는 쓸쓸합니다. 신안 바닷장어 구이집에서 밖을 보니 회색빛 하늘과 비에 젖은 건물 달리는 차의 괴적이 삭막합니다. 그래도 설레입니다. 초로의 비 오는 거리를 찾아와 만나게 될 중년의 친구들이 기다려집니다. 이어폰으로 전해지는 노래는 입니다. 중년 여인들의 사연이 담겨있는 영화 ost 가 오늘의 분위기를 돋우네요. 밴드에서는 병대가 3번 출구라고 안내 문자를 잘못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쓰는 걸 중지하고 제대로 된 출구와 위치를 알려야겠습니다. 비 오는 거리에서 가을 속의 찬비를 맞으며 조금이라도 헤매게 할 수는 없지요. 병대는 중년을 애창하고 있습니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고 또 그렇게..

고적. 2017.03.01

시가 있는 달밤 1

2015. 7. 22 옛날 그 집 /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 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릉 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고적. 2017.03.01

[스크랩] 野花 / 들국화

열매가 맺혀 있었다. 웃음도 즐거움도 반가움도 모든 것은 가을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런데, 산천은 지난 여름을 말해 주고 말라버린 나뭇잎과 빨갛게 변해버린 솔잎이 삭막하도록 가슴에 와닿아 눈에 선한 풍취있는 산자락은 연기해 가을처럼 정감을 불러일으켜 주지는 못하고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고향의 풍경은 그렇게 우리랑 하루밤을 같이 했다. 아침에 은심, 연희랑 구계등이라 불리우는 깻돌 밭을 거닐었다. 여름날, 태풍이 휩쓸고간 흔적이 그대로 방치된 채 부서진 집과 그 안에 살림살이 집기들이 흉물로 나뒹굴고 있었는데 왠지 무성의 한 지역 주민들의 게으름이 엿보였다. 찾아드는 사람들을 위해 조성했을 부서진 파고라와 벤치, 돌무더기에 파묻힌 산책길은 전혀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채 원래 자연 그대로 만의 모습이..

고적. 2012.10.31

[스크랩] 여승 (女僧)

백석. 시인 본명 백기행 출신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12년 7월 1일 사망 1995년 학력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교 데뷔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 定州城」 발표 작품 활동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와 사회 2003, 12, 22. 멧새 소리 미래사 2002, 01, 10. 개구리네 한솥밥 효리원 2000, 06, 01. 내가 생각하는 것은 선영사 1995, 12, 01.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냄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 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

고적. 2011.04.03

달마산.

2010년 10월 23일. 달마산 도솔봉의 도솔암에 친목계원들과 함께 찾아갔다. 암자를 복원해 현재 암주로 있는 법조스님은 양산 통도사에서 불문에 귀의해 오대산 산사[월정사]에 계시다가 고향인 달마산 도솔봉에 암자를 복원해 법문을 닦고 계신다. 고향 후배이며 친구의 동생이기도 하지만 출가한 불제자 다웁 게 세속의 바람결에 나름의 고견도 피력하시고 풍기는 양상이 땡고추는 아니다 싶어 대견하기도 했다. 도솔암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 때부터 고승들의 도량처로 알려졌으며 숱한 이야기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시대, 시절마다의 명소이자 정유재란 때 왜구들이 불살라 터만 남아 여태껏 주위 주민들만 알고 있던 암자이기도 하다. 바다내음이 산문밖에 머물고 바람은 山竹, 가냘픈 이파리에 시샘하며 구름이 白石, 차가운 ..

고적. 2010.10.29

경복궁 / 하늘이 내린 큰복.

2010. 9. 26.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아 휴대폰으로 찍은 몇 장의 옛 궁궐 정취. 고종이 대원군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청궁을 창건하고 민비와 동북쪽 끝에서 기거하면서 연못(향원정)을 파고 팔각정을 지어 시름을 달래었다고 한다. 원래는 팔각정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북쪽인 건청궁 앞으로 나 있었다는데 지금은 남쪽인 현재의 위치에 놓여있다. 향원정의 맑고 청명한 오후. 연못속에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은 100년 전에도 피어올라 군주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으리라.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이며 연못에 빠질 듯이 선을 잃어버린 소나무의 청초함이 왕의 가슴속에서는 어떻게 새겨졌을까? 잠 못이루는 북악의 그늘에서, 비운의 왕은 이곳 어딘가에서도 구국의 탄식을 하였으리.... 향원정 주변풍경과 휴식객들..

고적. 2010.09.29

今日.

비 자주 내려 채소 먹어 본 지 오래 이따금 하늘 열려 비는 멀고 흰 구름 맑은 하늘 구비 지는데 급한 달 가을 속으로 한 없이 기울고파 벗 있는 추탕집 기웃거려 보지만 여름 기운 남아있어 그는 없고 늘 곁에 맴도는 병고 쓸쓸해 가는 세상 술이라도 탁주!, 그놈마저 끊어야 하나 이제 매일은 눈 조차 어두워져 물드는 숲 속에 산새 보이지 않고 울음소리 적막해 저녁인가....

고적. 2010.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