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 19

좁고 긴 하늘.

산속에 있으면 산사람이 되고 산 하늘만 바라보는데 웬일인지 넓은 하늘은 떠올라 바닷바람이 자꾸 가슴을 파고들어 슬픈 구름은 희미하게 좁은 하늘 어딘가로 떠 다니고 물안개 같은 운무는 산으로 산으로 골짜기 찾아 휘저어 굽이친다. 나그네 같은 인생 사방이 산인 산으로 기어들어 그 입구, 길에서부터 골짜기 구비구비 산길까지 좁은 하늘 따라 산만 쳐다보고 세상은 숨어있는것처럼 힐끔거려 훔쳐보게 한다. 내 꿈은 반짝이는 바다! 끝이 없는 하늘만큼이나 뱃놈이기를 원했던 적이 있었고 넓은 하늘 선명한 뭉게구름처럼 방랑의 자유를 동경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 지금 지친 몸 되어 옛사람 李白의 산협 무리들이 생각나고 그들의 산속이 친숙하게 다가서니 산은 붉은 적송과 이끼덮힌 돌들이 친구라 반겨 좁은 하늘이어도 법흥사 양옆..

고적. 2010.05.24

해.

겨울 햇볕 따라서 담장 밑에 앉았다가 건물 측벽에 기대어 앉는다. 양 팔은 깍지 끼고서 눈은 그늘 끝을 쫒는다. 아이는 오후 떠 도는 해와 할아비의 수염을 본다 마른 입가에 침이 흘러 소매는 축축하다. 잔뜩 껴 입은 여러 겹의 옷이 아이는 근지럽다 오줌은 마려운데 할아비의 팔목은 풀리지를 않고 졸음은 눈 껍풀과 코 골음으로 아이와 씨름한다. 울음 직전의 안간힘이 아이에게 뻗칠때 얼른 해는 떨어져 졸고 있는 눈을 띄었으면.....

고적. 2009.12.24

[스크랩] 태양이 부활하는 동지.

우리들의 축제. 동지는 태양이 부활하는 최고의 정점 태양족이었던 선조는 하늘에 제사드리는 제천의식의 가장 큰 의식으로 동짓날 붉은 음식을 바쳤다 밤은 이제 물러가고 북수의 별과 어둠은 고요한데 생명은 잉태되어 청수를 기다린다 축제의 환희와 기쁨은 부정의 잡귀를 강력한 빛에게 쫓아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동지는 축제의 날이 되었고 신 들은 그날 모든 이야기를 동원하여 하늘이기를 바랐다 우리들은 허무하게 잊으러 애쓰고 꿈도 없는 먼 이족의 전설은 우리의 것이건만 그들의 것이 되고자 몸부림친다 사람들은... 동지는 눈 내리는 저녁 창문밖에 하얀 눈은 그칠 줄 모르고 쌓이는데 식구들은 김서린 새알팥죽과 함께 희망스런 도란 거림으로 행복한 태양을 기다린다. 메모 : 2009. 12. 20. 동지는 짧은 밤이 다하고 ..

고적. 2009.12.20

[스크랩] 혼자 걷는 가을.

한참을 걷다가 준비성이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늘 같은 날, 카메라 라도 가져왔으면 담을 수 있는 풍경이 더러 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저수지가의 정리된 산책길을 여유롭게 걸었다. 토요일 ㅡ 천안의 가을은 익어가고 잘 꾸며진 산 밑의, 공원 같은 산책길은 쌍쌍이 거니는 연인들의 모습 속에서 완성된 사랑처럼, 이제 완연히 가을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수량이 풍부한 인공 폭포의 물줄기 아래서 조화롭게 조경된 자연석 계단과 소나무와 이끼 피어나는 수경초와 또, 다른 수목들이 멋대로의 뒤틀림으로 암석 사이에서 용트림하고 있었다. 인공폭포였지만 폭포 밑의 작은 소에서는 피어나는 물안개가 있었고 옅은 소용돌이가 일었다. 상당한 수준의 설계와 군 더디기 없는 시공으로 찾는 이의 심사를 어루만져주는 수준급..

고적. 2009.12.01

山雨.

골짜기로 이어지는 좁은 들녘 산에 비는 내리고 흩뿌려지는 겨울비 치악산 기슭 한적한 농가는 없고 거리가 먼 먼 풍경 일수 없는 이상한 집들만 그나마 산비도 피해 내리는데 서 있다 이미 수명이 다 한것 같은 처마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산속의 집 그냥 들려나 보는 나그네의 산이 아니기를 산은 비를 품고 말한다 산은 비를 내려 말하려 한다 상(商) 흔의 색깔을 나무라고 있다. 산비 가... 산길을 인적 없이 걸었던 때가 있었고 가다 맞이하는 봉창 문의 정겨움이 계곡 따라 엎어져 있는 큰 돌 옆의 그 어느 집에 있을는지 지금은 산에 비만 바라본다. 산이 좋아 산이 있고 산이 있어 산이 좋은 산에 사는 사람들도 그냥은 산이 아니고 산에 사는 산 비가 있고 산 비가 있는 산 집이 있었으면 싶어 진다. 산 비는 ..

고적. 2009.11.30

바람의 혼(魂)

바람은 시간 낙화되어 날리던 꽃비 짧은 봄날은 가고 봄날처럼 화사한 누이는 바람 되어 혼으로 갔다. 참매의 날갯짓에 맹금은 서열의 선후를 짓고 긴긴 숲 속 비상하는 형제는 혼이 깃들어 바람이 됐다. 햇살은 물든 낙엽 산그늘 내려 처연한 길을 혼자 걷는 고적한 나그네는 바람의 추억을 더듬는다. 물가를 뒤덮은 백설 찾아드는 길손은 화롯가 머문 눈길은 긴 밤 연인 되어 바람의 시간을 달리고 있다. 시간은 바람 바람의 혼은 세월을 간다.

고적. 2009.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