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39

박원순의 유서

2020. 7. 11 내 딸과 아들에게.. 유언장이라는 걸 받아 들면서 아빠가 벌이는 또 하나의 느닷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제대로 남길 재산 하나 없이 무슨 유언인가 하고 내 자신이 자괴감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유산은커녕 생전에도 너희의 양육과 교육에서 남들만큼 못한 점에 오히러 용서를 구한다. 그토록 원하는 걸 못해준 경우도 적지 않았고 함께 가족여행을 떠나거나 함께 모여 따뜻한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구나. 그런 점에서 이 세상 어느 부모보다 역할을 제대로 못한 점을 실토한다. 가난했지만 내 부모님께서 내게 해주신 것으로 보면 특히 그렇단다. 우리 부모님은 인생의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바치신 분들이다. 다만 그래도 아빠가 세상 사람들에게 크게 죄를 짓거나 욕먹을 짓을 한 것..

사내. 2022.01.01

아버지

2020. 5. 25 신록이 우지 짓는 안성 청룡사 골짜기 5월의 장미가 화려하고 아카시아 찔레꽃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차창밖으로 무수히 스쳐가는 산하 기분 좋은 햇살 온통 짙푸른 천지 노래는 감미롭게 흐릅니다 어느 카페에 들려 산자락 나무 그늘 아래 몸을 맡깁니다 감성으로 물드는 마음을 다독이며 늙어가는 남자의 그림자를 봅니다 하얀 반백의 머리에 거친 살결 병약 힘은 오랜 병고의 산물 세상을 놓아버린 의식의 밑바탕엔 아버지의 고뇌가.... 그래서 해탈의 경지는 어디쯤일까 空공의 안착지는 오랜 생각하는 마음이 사랑이라 했는데 그 헤아림은 털고 일어나니 다시 마주치고 부딪치는 파란 하늘의 구름 그 속에 내가 있더이다

사내. 2022.01.01

한글 독립선언문

2019. 1. 9 만해 한용운 선생이 초안 작성 선언문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사람이 자주 하는 국민인 것을 선언 하노라. 이것으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으로써 자손만대에 알려 겨레가 스스로 존재하는 마땅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고 이것을 선언하는 터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정을 모아 이것을 널리 알리는 터이며,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는 터이며, 사람 된 양심의 발로로 말미암은 세계 개조의 큰 기운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것을 드러내는 터이니,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므로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것을 막고 누르지 못..

사내. 2020.04.01

초겨울

2018. 12. 4 시월상달이 가고 얼마 있지 않으면 동짓달이 돌아옵니다. 이때는 밥상이 푸짐하여 기름기 자르르한 햅쌀밥에 디퍼리 둥둥 떠있는 시래깃국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무시에 갈치조림은 실하기만 해 달짝지근하고 와삭하니 베어 먹는 싱건지는 막걸리 맛을 한층 돋우고 무시 생채에 전애 무침회는 한 볼때기 거침없이 맛나게도 달큼했습니다. 지절이 시제도 끝나고 건장에 쓰일 나람을 엮으면서 더러는 골목마다 이웃끼리 월편 떡도 해 먹고 끼리끼리 계가리도 하면서 한겨울의 해우 발 채비를 준비했더랬습니다. 왠지 쓸쓸하고 한편으로는 넉넉한 가슴이 밤하늘을 수놓습니다. 골목을 굽이돌면 차가운 대기에 달빛은 유난히 밝아 잎진 감나무 그림자 위로 별빛도 속삭입니다. 그대여 누구를 만나러 그렇게 바삐 가시나요 저곳에 ..

사내. 2019.01.04

국화

2018. 10. 2 자연은 위대해서 스스로를 키워나간다. 꽃망울이 돋고 2주 만에 한 두 송이 꽃을 피웠다. 햇볕과 바람과 이슬이 낮과 밤을 변화시키고 일교차는 신비롭게도 노란 꽃잎을 선물했다. 국화! 너는 잉태하고서 탄생도 힘들었지만 또 살아갈 날도 순탄치 않을 듯 무서리 내릴 때까지 첫눈이 내릴 때까지 그렇게 도지기를 맞으며 피어 있으리 그러나 얼마나 감사한 여정이냐 아침 이슬 반짝일 때 오후 햇살 눈부실 때 너는 가는 발걸음 붙잡고 너의 고운 자태 뽐낼 수 있지 않은가 수줍음 가득한 웃음으로 소박한 인정으로 동무 같은 꽃이여! 너로 인해 오늘 난 선물을 받았다. 지는 너의 모습과 함께려니 그렇게 알았는데 이제 내일이면 당분간이구나 2주 후에 다시 보자. 내 어여쁜 꽃이여! 내 동무 같은 꽃이여!

사내. 2018.10.06

2018. 9. 30 처음에는 그가 전부인 줄 몰랐습니다 떠도는 밤마다 꾸는 꿈은 무엇을 애타게 찾지는 않았으니까요 다만 이제 와서 애태우는 것은 그로 말미암아 다치는 다른 마음들을 어루만져 주는 기회도 없이 고스란히 놓쳐버릴까 염려 때문이지요 달빛은 처마끝으로 밝게 스미어 들고 시름은 더 깊게 잠기어 드는데 그대여 어떻게 하면 모두 곁에 조금 더 머물를 수 있나요 대답해주세요

사내. 2018.10.06

화창한 오후

2018. 9. 24 추석 명절이다. 성화가 산소에 다녀왔단다. 조상님 뵈올 낯이 없다.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중추 지절, 추석명절에 넉넉하고 풍성한 마음으로 고향도 가고 성묘도 하면서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오랜만에 웃음 가득한 이야기들을 나누어야 하는데 이렇게 창가로 달려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먼 풍경만 응시하고 있음이다. 하늘이 너무 맑다. 북한산 남산 도봉산 손짓하며 부르는 연인같이 티 없이 맑은 하늘과 시내의 산뜻한 건물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오고 더구나 오늘은 추석, 서울의 하늘과 도시의 풍광이 이렇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란 실로 오랜만인 것 같다. 땡벌도 고운 햇살에 살짝 졸고 화단에 국화가 꽃봉오리를 틀고 있다. 공원보다 잘 가꾸어진 ..

사내. 2018.10.06

이별

2018. 5. 6 - 달과 술의 연인 - 이백 역해 이원섭 청산은 북쪽 마을 가로놓이고 맑은 물 흘러 동편 성(城)을 도는데 여기서 한번 나뉘면 나그네의 만리 길 지향도 없으렷다. 떠가는 저 구름은 그대의 마음인가. 지는 이 해는 보내는 내 정일 레. 손을 휘저어 드디어 떠나는가. 쓸쓸하여라. 말 우는 저 소리도. 送友人 송우인 靑山橫北郭 청산횡북곽 白水遼東城 백수요동성 此地一爲別 차지일위별 孤蓬萬里征 고봉만리정 浮雲遊子意 부운유자의 落日故人情 낙일고인정 揮手自玆去 휘수자자거 蕭蕭班馬鳴 소소반마명 산은 움직이지 않고 물은 흘러가는 것이므로 보내는 이와 가는 사람의 정, 그냥 아무렇게나 묘사한 자연의 풍경이 아닐진저 헤어지는 한 번의 일과 떠나는 만리 길의 애끊는 정은 구름으로 나그네를 비유하고, 낙일로..

사내. 2018.07.08

봄비

2018. 3. 16 오늘도 비가 내렸습니다. 봄비입니다. 회색 빛 도시의 거리 위로 안개 같이 다가와 이슬처럼 젖어듭니다. 봄비! 상쾌한 바람이 이네요.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오늘입니다. 경이로운 생명의 움 틈이 느껴지면서 겨우내 메말랐던 화단의 흙들이 검게 젖었습니다. 바라보는 가슴도 비에 물들어, 흠뻑 젖어듭니다. 기대되는 건 앞으로 펼쳐질 연초록의 풍경과 봄바람 살랑이는 아름다운 꽃들의 환희입니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걸음걸이라 천천히 가는데도 옆사람과 속도가 같네요. 아마 그 사람도 나와 같은 감성으로 봄비를 즐기나 봅니다. 봄비는 박인수의 '그 사람'까지 떠오르게 합니다. 노래꾼인 그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다소 경쾌하기까지 한 곡조에 비해 우스와 비애에 젖어..

사내. 2018.03.21

나그네

2017. 10. 18 구름 위에 비추이는 눈부신 햇살 밝고 따스한 일상 그 고마움의 항해 이제는 꿈꾸는 자의 넋 두리가 되어버렸다. 세상의 숲 속에서 잎사귀 사이로 내리쬐이는 빛의 향연을 쫓아 무작정 산길을 간다. 작은 빛줄기가 강렬하게 수풀을 파헤친다. 길이 있는가? 그래, 시끌 벅적 되던 세상 그곳은 주막이고 술 깨면 떠나가는 너는 주객 인생은 나그네인 것을.... 햇살은 포근하게 모든 것을 감싼다. 16이 내공이라 했는가. 내공을 쌓고 쌓아도 세월은 무상하고 지어미도 지아비도 어찌 이불속 끈적임 만 추구하겠는가만은 사는 게 뜬구름, 사랑을 품고 사는 인생사 나그네라네. 늘 안타까워지는 일 구름 속도 아니고 구름 뒤에 가리어진 저 밝은 햇볕은 나의 간절한 소망 인생은 객잔의 나그네.

사내. 2018.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