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걷다가 준비성이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늘 같은 날,
카메라 라도 가져왔으면 담을 수 있는 풍경이 더러 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저수지가의 정리된 산책길을 여유롭게 걸었다.
토요일 ㅡ
천안의 가을은 익어가고 잘 꾸며진 산 밑의,
공원 같은 산책길은 쌍쌍이 거니는 연인들의 모습 속에서
완성된 사랑처럼,
이제 완연히 가을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수량이 풍부한 인공 폭포의 물줄기 아래서
조화롭게 조경된 자연석 계단과 소나무와 이끼 피어나는 수경초와 또,
다른 수목들이 멋대로의 뒤틀림으로 암석 사이에서 용트림하고 있었다.
인공폭포였지만
폭포 밑의 작은 소에서는 피어나는 물안개가 있었고 옅은 소용돌이가 일었다.
상당한 수준의 설계와 군 더디기 없는 시공으로
찾는 이의 심사를 어루만져주는 수준급의 공간이었다.
동행인이 이성 간이라면 앉아보고 싶고,
안으면서 입술을 나누고픈 사랑의 공간이며
가을이 비껴갈 수 없는
물드는 석양이 저녁 늦게까지 머무는 아름다운 장소였다.
혼자서, 갈대 무성한 저수지 갓길을 거닐면서
외로이 서있는 수양버들을 바라보았다.
천안의 명물 중에 하나가 수양버들인데 지금은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 시선을 좀 더 멀리 보내며
물 위의 수초 수경 대가 주위와 조화되지 않음을 발견하곤 더 멀리 산을 본다.
낮은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이제 막 시작되는 단풍의 풍광이 산 밑의 건축물과 어울려 평화로웠다.
갈꽃은 멀어질수록 창호지의 질감처럼 포근하고 아늑하게
눈에 익은 색으로 남겨지고 있었다.
가을길이 나 있는 곳까지 그렇게 남겨지겠지.....
하는 계절의 정취가 발길과 함께하고 사색의 상념은
혼자 이기에 구름처럼 마냥 피워 올랐다.
바람이 지나가고 물든 잎은 잔디 위로, 보도 위에
물속 물고기 떼의 유영처럼 빠르게 휘날리고
초로의 아낙은 나처럼 혼자서 옷깃을 세우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적당한 위치에 놓인 벤치는 비어있는데
그늘이 다가서는 모퉁이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깊은 눈길로 한 곳을 보고 있다.
나도 본다. 구절초!
구절초였다.
가을이면 뽑아다 그늘에 말려 어머님께 달여 드리던 아버님.
저 여인도 그런 추억이 있을까
첫눈이 내리면 염소를 잡아 고아 드리던 아버님의 어머님께 대한 정성을
저 여인도 기억해 내며 누군가를, 아니면 그 시절을 떠 올리고 있으려나,
한 차례 더 바람은 지나가고 내가 먼저 옮기는 발걸음에
그네도 시선을 바꾸며 눈인사를 한다.
풍경이 있고 시간이 있었다.
처음의 계획은 아니었기에 카메라를 빠뜨린 것에 아쉬움이 덜 했지만
모처럼 잘 꾸며진 공간이었기에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혼자서 쳐다보는 구름이 무척 하얗다.
분수대의 물안개 무지개가 차갑게 느껴진다.
가을 속에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