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

[스크랩] 내연산 청하골 골짜기.

홍률 2011. 11. 11. 22:49

 

 

 

 

전날은 해가 저물었다.

보경사 앞 매표소에서 은심이는 들어가지 말자 했다.

하긴, 내연산 정상까지 2시간 코스라니 왕복 4시간이요 구경하려면 도저히 감당키 어려운 시간이었다.

이미 땅거미가 지는 저녘 !

신태는 이쪽의 산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텐트와 배낭만 꾸리고서 며칠씩의 산행도 숫하게 했다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입산을 포기하고 절 앞 팔각정의 음식점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절 주변의 나지막한 산들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아늑하며 안정감 있고, 여인의 평온한 젖가슴처럼 풍만하지도 않으면서 부르러 웠다.

좋은 자리구나 싶게 절로 생각이 미치었다.

 

산사.

그 안에 있는 세계는 모르겠다.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그곳의 승들은 정녕 부처가 되려 하는가?

마음이 가는 길을 그들은 어떻게 다스릴까.

그래서 진정으로 깨달을까.

인간 이기를, 스스로 놓아 버릴 수 있을까.

 

저문 해가 멀리 산에서도 보이지 않고

빈 술잔만 탁자 위에 놓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짧은 거리지만 한가하게 가을은 낙엽 속에 있었다.

그 길을 은심, 영례, 연희, 신태, 수호가 같이했다.

 

 

 

 

 

 

아침인데,

이슬비가 찬기운과 함께 새벽을 열고 있었다.

누군가 소리치고 있었다

[빨리 일어나 밥해라]

영신이가 귀신처럼 아침잠을 방해하고 있다

밤새 저놈 안 잡아가고 아귀들은 뭐 했나.

 

그 소리에 잠을 설치고 밖을 나섰다.

신태보고 가자 했지만 비가 오신다고 했다

결국 혼자 나서야 하는가 보다

오랜 습관이랄까,

지방 생활을 하면서 저녁이면 철석같이 동행하자던 약속들이 아침이면 이래저래 핑계들이 많다

그래서 늘 행동에 나서는 애들만 산행을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은 혼자다

옆방의 가시나들은 아예 기척도 없다

비가 뿌리는데 낙엽이 젖은 길은 차가우면서 싱그럽다

좋다!,  이보다 더 좋은 상쾌함은 없을 것이다

젖가슴 같은 산이 우측으로 동행한다.

 

보경사에 다다르니 산꾼들이 벌써 하산하여 일주문을 나오고 있다

이 시간이 좋은 것이다

몸에는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고 발은 가볍고...

샤워하고 출근하면 하루는 그의 에너지로 충만하니까.

 

경내에는 예불소리가 너무도 한가롭게 은은하다

보니 요소요소에 음향시스템이 잘 되어있어 스피카로 흐르는 산정의 음률은 자고 난 마음을 맑게 이끄는 듯하다

밥그릇 모양의 큰 돌그릇 감로수는 소리도 없이 넘치고, 한 바가지 아침 물을 마셨다

목이 넘친다

이보다 더 좋은 술은 없을 것이다

한잔 술이 아침의 감로수로 하루를 열고 있음이다.

 

대웅전에 차마 들지 못하고 문밖에서 합장했다

보슬비는 여직도 내리는데 물든 단풍처럼 부처님의 존 불은 온화하니 미소로 맞이한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대웅전 뒤, 뒤꼍의 처마 밑에는 민생을 구제했다는 수천 명분의 밥을 담았던 나무 구시가 그대로 있었다.

가난의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데 절은, 애환의 많은 흔적들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주춧돌이 청석이었다.

 

일렬횡대로 여러 개의 전각들이 대웅전 뒤편에 있었다

단순하고, 각각의 성격 하고는 전혀 판이했지만 이처럼 배치를 했던 의미도 나름대로 있겠거니 하면서

산령각에 신발이 있어 그쪽을 향했다.

 

벌써 몇백 배를 했을까?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있고 이마와 콧잔등에는 땀이 송골송골하다

약간은 지친듯한 자세였다

그렇게 새벽을 탐한 여인은 누구를 위해 예불을 하는 것인지.

자식을 위해,

아니면 정(情人)인을 위해,

그렇지 아니면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 형제자매를 위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묘한 아름다움으로 그 자리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웠다.

 

원진국사의 묘비까지 보고

지층에 매달려있는 거대한 종과,

종루 위의 탈북을 뒤로하고 절간의 문을 나섰다.

 

보경사 좌측으로 내연산 12 폭포의 청하골이 길을 열어놓고 있었다

골짝으로 시작되는 산길은 낮으면서 아기자기해 산행객이 많을 것 같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림 같았다.

골짝의 돌들 중에 청석이 섞여 있었다.

청석을 보니 영덕 놈 [정재열]이 생각났다

만일 딸을 낳으면은 자기를 달라했었는데, 며느리 삼자고....

일찍이도 장가들어 나를 만났을 때는 아들놈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킨다 했었지,

공항에서 그렇게 약속했었다.

두 부부끼리!

 

골짜기는 사람들이 불어나고 있었다.

비는 이슬처럼 져 갔다.

 

 

 

 

 

 

 

 

 

실로 감탄사가 흘러나오는 절경의 연속이었다.

낮게 시작되는 계곡의 초입이 아무렇게나 솟아난 바위들로 그림이 짜이고

물이 흐르는 골짝의 버려진 돌들은 인적을 반기는 화신으로

구도의 길을 걷는 수도승의 흔적과도 같았다.

 

전날에는 신태가 말했었다.

우리가 성장했던 서남의 풍요로운 들녘과 지금, 길을 걷고 있는 동해의 지형은

인간사를 말해주는 사실적인 모습이며 형성의 뿌리라고....

 

수평문화가 내재되어있고, 그래서 협동의 모태가 되어준 들녘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수직문화의 뿌리로 뒷받침되어준 산악과 협소한 경작지에서

그들은 협동 이기전에 내 것을 챙기는 본능이 먼저였고 남을 짓밟고 일어서야 하는 지혜를 강구해야 했다.

상당히 정치적인 숙명을 지형에서 느낄 수 있었기에 엊저녁 숙소로 오면서 나눈 대화였다.

 

산을 타며,

인사를 건네는데 생소하게 받아들이고 어색해한다.

순진해서 일까?

갑자기 마주친 사람들처럼 순간으로 스친다.

 

내리는 비는 멎었다.

비옷으로 단장한 한 무리의 일행들이 걸음을 바삐 하며 옆을 치고 나간다.

더울 텐데....

그래도 그들은 바쁘다 상당한 속력으로 앞지른다.

대단하다 싶지만, 비옷까지 입고 저 속도면 상생폭포 못가 쉴 자리를 찾아야 할 거다.

그들 때문에 시간을 본다. 9시다.

하산해야겠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천령산 쪽의 어느 계곡이다.

 

산은 노래다.

정선의 아우라지가 그렇고

지리산의 애간장이 그렇다

 

호미곶의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출의 이야기를 탄생시켰다면

이곳의 내연산도 분명 무언가는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야속히도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12 폭포의 노래는

달빛 머금은 다리의 사랑과

별빛 반짝이는 별이의 마음이 담기기도 했을 것이다.

 

부드럽고 곡선 좋은 내연산을

정상으로 가는 청하골을

언제고는 다시 찾아들 것이다. 시간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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