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타고 있습니다.
숨 가쁘게 내 비추이는 뜨거운 햇살이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을 더욱 가볍게 하네요.
강렬함은 여름의 그림입니다.
벗고, 또 벗기운 여름이 찌고 있습니다.
살속을 파고드는 끈적거림이 가시지를 않습니다.
차 한잔 하자는 전화를 받았지만 그리 쉽게 약속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은 오랜만의 시간이라 그리하고 싶은데 꼬이는 일정이 얼른 회신을 못 하고 있습니다.
얼음처럼 차가움이 골짝을 타고 흐릅니다.
포말로 부서지는 하얀 물거품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혹시나 실망스러운 위안이라도 가슴속의 계곡은 시원했으면 합니다.
짙은 녹음은 독사의 독기처럼 하늘을 향합니다.
밝고 가벼워 하늘이라 하고, 묵직하고 칙칙하여 땅이라 한다지만 요즘은 구름과 태양이 제 몫을 하네요.
등짝을 타고 흐르는 땀줄기가 가만히 있어도 샘솟듯 합니다.
그런 여름의 주말과 휴일이 내것이 아니기에 짜증이 나지만 또, 그것이 좋기도 합니다.
강남대로는 한산하고 조명빛 반짝이는 거리는 여름밤 꽃이 폈습니다.
테헤란로의 초입.
마키노 차야의 막걸리는 실내의 차가움 만큼이나 달콤하고 여름밤은 도시의 거리에도 도사리고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우리는 늘 매일의 일상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계절의 변화와 매일로 이어지는 그 변화 속의 어떤 이야기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너무도 무심히 넘기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바다내음이 없어도 해변의 싱그러움이 파도소리에 묻어나 거리에 철썩이고
시골의 토방 마루에서 모깃불로 번져오는 쑥내음의 산뜻한 연기를 가로수 아래 나무벤치에서도 맡을 수 있습니다.
반바지의 시원스러움이 모기에게는 유혹의 먹이 굴이 되었어도 양재천의 물소리는 풀벌레 소리와 어울려
노래가 된다는 것을 여름이면, 여름밤이면 더욱 알 수 있습니다.
진추하의 [원 서머 나잇 / 어느 여름밤]이 한쪽에서는 이야기로 엮어지기도 합니다.
폭염이 계속되는, 그래서 파고드는 짜증과 후덥지근한 끈적거림이 곁을 떠나지 않고 있어도
폭염보다 더한 열기가 우리에게는 행복한 흥분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도 이 여름밤 만끽하고 있습니다.
활은 바람을 가르고
검객은 찰나를 찌릅니다.
돌쇠 같은 우직함이 되치기를 감행하고
종주국, 종가의 면모를 한방으로 차 버리는 꿈속 같은 여름밤이 런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역삼동의 여름밤이 축구게임의 기다림으로 많이도 남아 있을 때
네온사인 명멸하는 강남역 거리는 너무나 황홀하고 도둑들은 그들과 만나주기를 꼬시고 있었습니다.
마카오 박이 홍콩에서 중국계와 모종의 그림을 그리고 뽀빠이가 한국계 도둑들을 주어 모으고 있을 때 그들은 쓰레기였으며 배신과 거짓이 난무하는 한갓 도둑들이었습니다. 태양의 눈물은 범접할 수 없는 피를 부르는 다이야였지만씹던 껌은 자진해서 합류하기를 원하고 가슴속에 배신의 흔적으로 한 남자를 증오하며 가석방되는 펩시는 미모만큼이나 전무 가이며 사랑에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초짜 줄 내리기 잠파노의 풋사랑이 망아지 예니콜의 마음 한편을 찔러보지만 밑바닥 그늘의 습성이 그녀를 돌려 세우 지를 못 하고 예니콜은 뽀빠이와 앤드류를 농락하며 태양의 눈물을 가지고 홍콩을 향합니다. 첸과 씹던 껌의 늙은 황혼의 사랑이 그들의 클라이맥스였으며 장렬한 액션씬이 그들의 애정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웨이홍을 쫓아 도둑 패에 합류한 홍콩 경찰 줄리는 팹시에게 경찰은 도둑이 될 수 없다며 총을 겨눕니다. 그렇지만 세상살이는 경찰도 도둑이며 도둑과 깡패와 경찰은 같은 부류의 쓰레기들입니다. 풋내기 도둑, 예니콜이 마카오 박에게 홍콩 호텔에서 그녀의 짐을 빼기는 걸로 영화는 끝이 나지만 여름밤의 후덥지근한 더위가 더러운 것처럼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뒤끝이 완성의 여운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상영의 시간대와 여름밤의 거리,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축구의 통쾌한 승리는 한 밤을 꼬박 세운 장장의 흐름이었어도 이렇게 기분이 좋습니다.
고추잠자리 하늘 높이 맴돌고
서늘한 하늬바람이 달마산을 넘어올 때, 하얀 구름이 석양빛에 노을 지던 저녁 무렵의 고향을 잊지 못합니다.
어제가 오늘로 이어지고 또, 오늘은 오늘의 밤으로 이어지며 곧 있으면 다가올 약속의 시간이 가까워 오네요.
푸른 에메랄드 빛 창공이 며칠째 서울을 맑게 합니다.
둥둥 떠 다니는 구름을 이렇게 여러 날 본다는 것은 행운인 것 같습니다.
무덥고 지루하고 타는 갈증으로 여름날이 머물지만
모두들 각자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면서 어느 여름밤, 꿈길도 거닐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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