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고향

홍률 2015. 6. 16. 18:41

 

 

 

 

2014. 07 29

 

금요일 밤에 영전 도착.

 

 

 

 

 

 

차 안에서의 피로도 잊은 채 한밤중에 밀려드는 오랜만의 정겨움이 고향인가 싶고,

괴괴한 동네의 조용함과 가로등만 반기고 있는 골목길의 스산한 어둠이 비로써 영전인가 싶었다.

 

 

 

 

 

 

 

김치 한 가지라도 집밥이 먹고싶어 일부러 저녁을 먹지 않고 내려온 길이기에

홀로 계신 형수님이 내려 온다는 기별을 듣고 잠도 주무시지 않은 채 차려주신 밤중의 밥상은,

허기와 수다와 웃음속에서 그 맛을 알 수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성찬과도 같은 것이었다.

 

고동 조림,

바지락 국,

풋김치,

묵은지,

기름기 자르르한 잘 익은 멸치젓,

뻘떡기로 담은 간장게장,

시골된장과 불그레한 텃밭 고추.

생선보다도 젓가락이 먼저 가는 반찬들이다.

 

벼락같은 소나기가 지나간 뒤이고

달마산을 타고 넘은 하늬바람이 뒷방 문으로 들어와 토방으로 빠져나가니

잠자리마저도 시원 수레 고향의 정취이고 밤이었다.

 

 

 

 

 

 

 

벌초하는 날.

 

우거진 벌안은 바닥의 넝쿨과 쑥대들이 제멋대로 자라 있었고

베어버린 잡목에서 돋아난 잔가지들이 예취를 더디게 했다.

그래도 산속에 자리 잡은 벌 안치 고는 형태가 빨리 자리 잡아가는 셈이다.

 

 

 

 

 

 

 

저녁에는 화산으로 시집간 민정이가 조카사위와 함께 읍내로 초대를 하여

작은어머님을 모시고 식구끼리 오붓한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은 문어와 장어를 사 와 삶고 구워서 헤어짐의 만찬을 식구 전체가 했다.

 

고향은 늘 그러하듯이

같은 풍경

같은 하늘이어도

항상 그리운 곳이어서 정답고 아늑하다.

 

다만,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어서

모두 바쁘게 자기 일에만 충실하고 개인화되어버린 성향이어서

들과 집에만 박혀있어 동네는 조용하고 활기가 없으며 사람들을 여유롭게 만나 지지를 못했다.

 

 

 

 

 

 

영전은 술의 고향이다.

예전의 향긋한 막걸리 (농주라고 부를 만큼 집에서 술을 담가 들로, 산으로,  바다로 일을 나갈 적이면 밥과 함께 새참으로 빠지지 않았던 애주)에서부터 댓 병 소주, 가끔의 한주, 그리고 명절이나 제삿날에 맛볼 수 있었던 유자향 풍기는 동동주와 청주는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이다.

 

술은 안주에서 비롯되고, 영전만큼이나 안주거리가 풍부한 곳도 드물 것이다.

도시 같으면, 영전의 밥상은 안주상과도 같은 것이어서 우리들의 고향은 술상의 원천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 든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작열하고 살기 등등한 녹음이 산야를 덮고 있는 지금,

고향의 밤은 별무리가 수놓고 풀벌레 소리 고고하다.

 

평상에서 보내는 초저녁의 이야기가 긴 밤으로 이어지고

동네 까끔에서 달마산으로 자리바꿈 하는 은하수의 반짝이는 밤하늘은 신비로운 동화 속의 별 이야기처럼

어린날의 추억을 들춰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고향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어

기쁠 때나 슬플 때에도,

혹은 전혀 무의미할 때에도,

나를 반기는 어머니 품속 같은 곳이리라.

 

금년은 유독 그 향수가 더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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