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의 노래.

시가 있는 달밤 2

홍률 2017. 3. 1. 01:40

 

 

 

2015. 7. 26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는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해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 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 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곱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죽거리지 마라

맨드라미(민들레의 경상도 사투리)

들마을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자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 운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접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 일제 강점기의 저항시인

이상화 1901~1943

경북 대구

1926 <개벽>에 발표

 

빼앗긴 들은 일제에 강점당한 국토(주권)를 상징하고 봄은 조국 해방의 날을 의미한다.

향토적 시어로 저항적이고 상징적이며 격정적인 반면에 서정적인 자유시의 성격을 표현하였으며

울분도 있고 절망도 보이지만 살찐 젖가슴 같은 보드라운 흙을 호미질하고 싶고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싶은 간절한 희망도 푸른 웃음, 푸른 설음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슴에 와닿는 건 향토적 시어다.

 

어느 봄날,

서구 정 길의 큰보단 같이 논물 채워주는 도랑의 풍족한 물과

비이슬 햇살 받은 보리밭 높이 떠 구름 속에 노니는 종다리가

울 너머 큰 애기의 애먼 가슴에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안겨주는 아니한 전경을 담고 있는 듯한 토속적인 언어들이다.

누구나 고향을 떠 올리고 상상하게 하는 지금은 추억의 들판이다.

 

광복 70년이라고 하는데 식민지로 살았던 당사자의 우리가 신일본주의 침략 일장기(해군기)를 앞세운 자위대의 전쟁 참정권을 협약하고

군함도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에 발언권을 확실히 못하는 사대의 저의가 무엇인지 아리송한 시점에 있다는 것이 이 시를 읽으면서 부끄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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