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 땅!
마늘밭을 지나서 갯내음 와닿는 어란포를 화원, 영신, 그리고 나, 셋이는 찾아들었다
그 무렵의 호기였을까? 둘이는 입대 하기 전이였고
방랑의 영혼은 바다로 이어져 예측키 어려운 단순함에 매료되고 빠져 들었다
배를 타기 위하여 오후 내내 어불도와 어란을 헤매다
나는 혼자 어불도의 배에 오르고, 둘은 어란에 있는 배에 올랐다
너무 안이한 사고(思告)의 경종이었을까
뱃 생활이 미처 익숙해지기도 전에 마주쳤던 비와 풍랑은
육지와 다른, 또 다른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이물이 잠기면 고물이 솟고
고물이 잠기면 이물이 용솟음쳤다
12시간이 넘는 작 어브
선장은 그물을 포기하지 않고
와바를 당기는 손바닥은 껍질이 벗겨 저 쥘 수가 없었다.
그물을 펼칠 때, 위치는 추자도 부근이었으며 석양에 물든 황금빛 물결이었는데
2시간도 지나지 않아 덮쳐버린 비, 그리고 바람! 폭풍이었다.
높은 파도는, 바닷가 태생인 나도 여태껏 경험 못한 힘센 괴물이었고
온몸을 때리는 주먹 같은 아픔은 지독한 빗줄기와 바람 속에 날리는 강한 물보라였다.
칠흑 같은 어둠은
아귀처럼 울부짖는 풍랑 소리에 묻히고
선장은 빗속에서도 소주를 밥그릇으로 한 사람씩 먹이고 있었다.
뒹굴면서도....
그때, 그 빗속에서 불빛 사이로 영진호를 보았다
엎어져 있는 화원이를 보았다
그리고 몇 시간째 였을까? 하루가 채워지지 않았을 시간까지 바다 위에서 실랑이 쳤다
어불도에 도착했을 때,
선방에서 나와보니 바다는 조용하고 햇빛은 쨍하니 눈을 뜰 수 없었다
배질하는 동안 많은 시간을 깊은 잠 속에서 보냈는가 보았다
선창에는 온 동네 사람이 다 나와 있었고
이 동네로 시집온 남심이 누나는 눈을 흘기며 위로하면서도 욕을 해대고 있었다
왜! 이 고생이냐고?
알 수없는 웃음은 입가에 실실거리고 손바닥의 쓰라림 만이 아픔으로 전해졌다
알 수 없음은,
선장의 여동생이었다
헛간에 목욕물을 데워 놓고,
하필이면 갈아입을 옷을 선주의 큰딸이 들고 서 있었다
나 보다 한 살 더 많은 큰 아기
서울 살이 하다가 시집가기 위해서 집에 있다고 했든가
보니 4ㅡH 활동도 안 하고 밤마실도 아니 가던데
바다에 나가지 못해 바지락을 캐던 어느 날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속살을 내 비치며 물속에서 스스로 짝꿍이 되었고
그날 우리는 제법 많은 바지락을 캤었다
어불도는 이야기가 생겨나는 섬이었든가 보다
해바라기를 심고,
상여꾼이 되어 인연을 알게 되고,
유채를 털며 바라보는 땀에 젖은 눈웃음을 보았었다
점방의 많은 외상 술값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치러지고
섬 뒤 바위틈에는 왜 그리 고동이 많은지
상어 잡이 하던 날 어란 공판장에서 복기형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아마도 어불도의 이야기는 좀 더 생겨 났으리라
뱃 사람의 생활 ㅡ
시작의 술잔, 어불도는 뱃 생활이 아니었다
복기형, 건식이, 그리고 선장 박지호,
어란 선창가 술집에서 윗녘으로 가는 배를 소개받고
종원형 몰래 빠져나가기로 했다
윗녘에는 먼저 올라간 영신이와 화원이가 있었다
화산 바다를 스쳐 물때를 보아 울돌목에 배를 실었다
그래서 배에는 선장이 있고, 선장의 물길은 영원한 해도 인가도 모른다
배는 쏜살같아서 얼마 가지 않아 시화도 바다에 다다르고
목포 동명동 제빙공장 부둣가에 정박했다
마주 보이는 삼학도의 정취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시간이 남아 갑식이를 찾았다
동명동 영남식당!
어머니는 여전히 바쁘고 갑식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푸념 속에 병진이 이름이 나온다. 오거리 어디쯤 있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수진이가 술을 가져온다
이 세상 여자 중에 제일 예쁜 아이이다.
몇 년 사이 여고생이 됐다
오빠, 사고 쳤어! 병진이 오빠랑 호남동에서...
수진이는 어제 만난 사람처럼 변함없이 대한다
요즘도 죽교동 깜상이랑 만나나?
병진이 놈과 갑식이가 염려되지만 잘 숨어 지내겠지 싶었다
어머니께 인사하고 나서는데 학교에 갔다 오면 자진해서 돕는다고 수진이를 돌아본다
예전에 예뻐했던 수진이를 기억하신 모양이다
목포에서 식재료랑 생필품을 배에 싣고
위도를 향하여 북쪽으로 연안을 따라 배질을 계속했다
무안 해제 닭머리 앞바다,
조기와 부세 잡는 칠산바다 남쪽이다. 삶쾡이가 넘실대는 바다였다.
영신이와 정배가 있었고 12척 남짓 선단을 형성했는데 삼치와 준치를 잡고 있었다
화원이는 법성포 앞에서 선장과 싸우고 바다 가운데에서 여객선으로 수영 쳐가 도망쳤다고 한다
각 시도 부근에서 삼치와 준치 잡이를 몇 날 며칠 계속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조기잡이 풍선들은 대 선단을 일구고 있었다
여름 바다는 조용하면 천국이다
아침 일출의 붉은 해는 거대한 붉은 산의 용 솟음이요
저녁 일몰의 붉은 노을은 황금 띠의 물결로 여울 진다
한낮은 서늘한 그늘 밑에 낮잠이니 뱃놈이 양반 아니 겠는가
상고선에서 술만 부지런히 대 준다면
이백의 젊은 날, 산협의 무리처럼 세상을 등지련만....
태풍을 피해 지도로 피신하고
길가에 세워진 수많은 비석을 보면서 유래가 깊은 섬이구나 생각했다
시화도(보화도) 부근에서 덕자(병치) 잡이 하면서
셋이서 뛰어들었던 바닷길의 물살이 울돌목과 또 다른 것이어서
왜란 때에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으로 병선(판옥선)을 짓고
병사를 조련했던 그 내력을 알 것도 같은 시건방도 들었다
영화 같은 이야기는 매일이 이어지고
사람 사는 곳의 공간은 그 처절함으로 인해 사랑이 피어난다
한 밤중에 상고선에서 싸움이 있었다고 한다
논산 입영 징집자들의 축하파티를 치르고서 벌어진 싸움판은 기억 속에 희미한데
다음날, 들이미는 고소장과 치료비는 뱃바닥의 핏자국처럼 너무나 황당 스러웠다
영신이랑 마주하는 두 눈에 부족한 잠만 쏟아지고
선상 에서의 생활은 그 세계만의 것인 것을...!. 깨달키 에는,
행동 따라 움직이는 좁은 공간과 시선 속에서, 하루를 허비하고서야 비로써 느낄 수 있었고
해적같이 자유롭고 방탕하며 단결심이 강한 것이 뱃사람 들인 것을 알 수도 있었다
술을 핑계 삼아 물에 빠진 선후를 찾으며
술병을 세워보고, 안주로 먹은 고기상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웃어넘기는 그들의 호탕함에 진한 뱃놈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해, 8월 입영자들 때문에 목포에서 어란으로 내려오면서
큰 배 기관장인 신홍선 배, 성천형의 순정 고백에
나이도 어려 듣고만 있었는데 왠지 서글픔이 일어
사랑은 모두 슬픈 사연을 안고 태동하는 걸까,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흑산도 술집의 밤늦은 시간까지 술집 아가씨의 집요한 요구와 설득에 아무도 모르게,
깡통과 여자를 기관실 선반에 싣고서 술집 아가씨의 도망을 도와
조업 3일째 기계고장을 일으켜 보조 엔진으로 일주일째 되던 날 목포 삼학도 부둣가에 하선했단다
다른 선원들을 다 내려 보내고 여자를 기관실에서 나오게 하는데
걸음을 걷지 못해 기어서 내려올 정도로 몸이 경직돼 있더란다
이 선배가 여자에게 마음을 준 것은 이때였는데 측은 하기도 하였지만
주도면밀 한 마음 씀씀이가 예사롭지 않고 지혜로워 다시금 보게 되었단다
돈은 있으니 여관을 피해 아는 사람의 집으로 안내해 달라,
광주의 주소지로 본인이 직접 가서 알려달라
보름 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싶다, 믿는 건 아저씨뿐이다
라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대, 소변용 깡통과 약 종류 등, 모두 아가씨가 준비한 것들이다
이야기의 진정성이 여자에게 무척 반한 것 같았다
여자는 친형님이 아시는 산정동 어느 집에 부탁하고
배는 삼바 시 조선소에 수리 들어가고
약간 들떠있는 마음으로 신홍집에 간다면서
찡한 여운이 감도는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짧은 바다의 인생, 바닷가에 살면서도 겪어보지 못했던 선상 에서의 기억이다
군대 갈 사람들은 군에 가고, 남아 있는 자는 또 남아서 그해 바다에서 가져온 준치 창 젖을 맛있게 먹었다
목포, 해군 부대에서 해병대 지원을 시도했으나 2번 낙방하고 이듬해 제주도로 들어갔다
그해 겨울은 해우도 많이 했고, 주승이 형하고 원 없이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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