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이었어도 날씨는 화창하니 맑지를 못해 시야는 흐릿했으나
선선한 기운은 덥지도 않고 나들이하기에 좋은 오후였다.
광화문 광장은 광장으로 명명하기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조형물과 꽃 시설물이 차지하였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동이 가능한 설치물이라는 점이 위안이 되었다.
가장 시원스레 가슴에 와닿는 감동은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북악의 확 트인 자태였다.
광화문의 복원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주변의 성벽이 어떻게 단장될지 모르지만 지금 욕심 으로선
높지 않게 나지막 하니 청와대와 북악이 시야에 들어왔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웅 이순신.
언제나 그 자리, 그 위치에서 400년 전의 그 위용처럼 당당히 서 있다.
이순신 (李舜臣 1545 ~ 1598) / 본관은 덕수 (德水). 자는 여해 (汝諧).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1576년 무과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 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에서 관직 생활을 하였다. 함경도는 여진족의 침략이 잦았는데
특히 녹둔도 둔전관으로 있을 때 기습해온 여진족을 맞아 적은 병력으로 선전하였지만
병사 이일 이 그를 나쁘게 평가하여 결국 백의종군하였다.
임진왜란 직전에 재상 류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임진왜란 동안 그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삼도 수군통제사를 지내면서
옥포, 합포, 적진포 싸움, 당포, 당항포 싸움, 한산도,
안골포 싸움, 부산 해전, 명량 해전, 노량 해전 등을 치렀다.
광장 분수대다. 음악에 맞추어 분수가 솟고 사진을 찍기 위해
물줄기 사이로 아이들과 어른들이 이순신 장군 동상으로 끼워 다닌다.
머지않아 광화문 광장에서도 한 여름이면 비키니를 입은
아가씨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멀리 보이는 청와대의 청색 지붕이 한눈에 들어오고
광장 이전처럼 차량과 높은 담장에 가리어져
소통되지 않던 그림이 아니어서 오후의 나들이는 기분부터 상쾌했다.
성군 세종대왕.
위대한 군주이며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룩해낸 절대적 독재자였던 대왕은 오직 백성만을 위해 너무나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종 (世宗 1397. 4. 10. ~ 1450. 2. 17.)
이름 / 도 ( ). 자 / 원정(元正). 시호 / 장헌 (莊憲).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원경왕후 민 씨 소생.
비는 청천 부원군 심온의 딸 소헌왕후이다.
조선 제4대 왕, 재위 1418 ~ 1450.
젊은 학자들을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으며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의 과학기구를 제작하게 했다.
특히 절대 음감의 소유자였던 그는 박연으로 하여금
악기도감을 설치하여 많은 아악기들이 제조되었다.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고 쓰시마를 정벌하는 등
정치, 경제, 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았다.
세종 문화회관 미술관.
외관이 수려한 서울에서도 몇 안 되는 건축물이다.
광장의 중간, 세종대왕 동상 뒤의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전시실이 있는데 지하로 문화회관과 연결되어있다.
지금은 한글 주간이고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을 치루어서
한글과 한글 디자인, 그리고 세종대왕의 발자취를 전시하고 있다.
성군 세종대왕의 동상과 세종로 종합청사 건물.
2009. 10. 9. 제막식을 마친 세종대왕 동상이며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와 휴대폰 등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의 수호신 해치 (해태) 조형물.
생화로 가꾸어진 조선 전통문양의 꽃밭 한쪽에 해치상이 잔디로 만들어져 있다.
얼마 전까지 해태상으로 불려졌는데 지금은 해치로 표기되어 있다.
세종 문화회관 본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연장이며 외관의 독특함과
부분 부분의 전통적인 무늬의 활용이 시선을 끄는 매력적인 건축물이다.
광장 건너편의 문화 체육 관광부와 미국 대사관저의
을씨년 스런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조선 전통문양의 꽃길 광장.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라인이 조성돼 있고
가지 각색의 꽃들로 도심에서 느끼는 또 다른 감회는
가벼운 발걸음과 상긋한 휴식의 즐거움을 주었다.
한 송이 꽃에 5가지의 꽃잎이.
분명, 창조의 신은 이렇게 만들지 않았으리
개량된 종 이라 해도 신비스럽고 아름다워 자꾸 눈길이 간다.
북악산.
심술 긋은 몽니가 가득한 그런 형세인데 무학대사는 어디가 예뻐서 이산 밑에다 도읍을 정 했을고.
광화문의 복원이 끝나고 나면 그 위용이 사뭇 달라지겠지만 확실이 명산은 명산이다.
사람들이 걷고 있는 이곳은 지하로 가는 램프인데 광화문 역과 연결되어있다.
화장실도 있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광장 너머로 북한산, 북악산, 도봉산의 원근감이
청와대를 감싸고도는 신령스러움으로 인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괜한 기대감과 신비스러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왔다가는 흔적의 이야기보따리를 품게 하는가 보다.
광장의 역할에 충실해지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고
북악의 정기가 새로 복원되는 광화문과 더불어 서울을 살찌우고
사람들이 허덕이지 않게 여유롭고 너그러운 기운이 상승했으면 한다.
광화문은 원래의 각도대로 3도(?) 정도 틀어서 복원된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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