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회상 (回想)

홍률 2009. 7. 9. 18:25

 

 

 

여름밤.

풀벌레 소리가 초저녁을 휘젓고,

반 달은 나지막이 샛길을 비추는데

그대여!  우리

 항상 같이 있고  늘 맞이하는 이 밤이지만,

처음 만나던 때를  생각하며 짧은 회상에 잠깁니다.

 

처량한 나뭇가지 사이로 물든 나뭇잎 몇 개,

추수 끝난  논둑길 가로지러 탄천으로 부지런히 내 달리던 그때가,

지금은 부끄럽고, 애스러워 웃음이 나지만

그래도 그때,

그대도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기뻤었습니다.

 

첫눈이 오고,

약속시간은 자꾸만 지나가는데 미련 둥이 당신은 정말 미련했습니다.

하염없이 눈은 내리고 오시는 눈은 발목을 덮어 소복이 쌓이는데

그대는 문 밖에서 언 손만 부여잡고 나 나오기만 기다렸습니다.

부르지도 않고 나 나오기만 그렇게,

하염없이 그대는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언젠간 나도 그렇게 하얗게, 지새우며

당신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나는 이 밤

여름에 내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여름에 붉게 물든 낙엽을 보면서,

 가슴으로 부르는 당신의 노래를 듣습니다.

달빛 젖은 가락은 이슬이 되어 영롱히 빛나고

무수한 색색의 꽃 실은,

 바늘귀 따라 아름답게 가슴을 수놓고 있습니다.

그저 노래는 그치지 않고 또, 별을 노래합니다.

 

그때 이후로, 처음으로 만나던 때 이후로

나는 다정스럽게 손목 한번 잡아 주지 못했습니다.

그대여 오늘 밤!

산책을 마치고서 집에 가는 내내 손을 놓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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