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 오후.
억새꽃이 바람에 실려가고 있었습니다.
낙엽이 산책길 보도 위에 뒹구르고,
가을이면 볼 수 있는 구절초와 지금도 피어나나 싶은 자주색 나팔꽃이 언덕에 있어 가던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양재천변은 조금씩 노란색으로 물들어 가고 오후의 햇살은 따스하니 오랜만에 대하는 얼굴들이 반가웠습니다.
이처럼의 산책이,
그리고 가을 햇살이
기분 좋고 특별한 것은 찾아와 준 동무들 때문일 겁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는 걸음마다 이어지고 초로의 속삭임은 기분 좋은 울림이었습니다.
가끔은 만나 한적한 오후를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하지 못함이 가슴에 남지만, 또 어쩔 수 없는 일.
무슨 핑계라도 있어야 만나 지곤 합니다.
그날은 조그마한 구경거리도 있었습니다
[기타 동호회]의 양재천변 공연이 있었지요. 잠시 다리를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해우소에 간다던 순애도 옆에 앉고,
캐나다의 풍경과 나팔꽃 이야기를 들려주던 방심이도 즐거움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안양천을 많이 걸었든가 봅니다 향재는,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들려주었습니다.
방심이는 예외지만,
늘 만나오던 얼굴들도 이렇게 반갑네요 순애도, 향재도,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서...
그러니 멀리서 와 모처럼 만에 만나는 얼굴은 또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어딘가에 감사하고픈 그런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타워 팰리스 앞까지 가자고 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엄격해서 공동체의 규범을 잘 준수한가 봅니다.
처음엔 자전거 도로의 출발이었는데 냇둑 중간의 보행자 산책로로 가자고 방심이가 앞장섭니다.
평소에 보행자 산책로는 여성분들이 주로 이용해 피하느라, 난 늘 자전거 도로를 다니곤 하였는데
자전거 주행에 방해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아직 따라잡지 못하는 의식 수준과 가치관 이겠지요
공동체의 규범이 배려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자연 속에 생존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순애는 화분에 화초도 애처롭다고 합니다.
야생에서 성장하고 자생하며 해살이를 하는 그런 꽃들이 좋다고 합니다.
분재 역시 슬프다고 하네요.
그런 말을 하는 그 마음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방심이는 전의 집에서 타워형 빌라로 이사 오면서 많은 식물과 화초를 일부러 가져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 붙이면 전부 다 보듬어야 하니까.
다만 좋아하는 자주색 나팔꽃을 키우면서 일 년 내내 꽃을 본다고 합니다.
둑방에서 붉은색의 나팔꽃을 발견하곤 씨앗을 찾기도 하였는데,
그 모습이 예사롭지는 않고 상당히 몸에 익은, 전원 속의 여유로움이 배어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이뤄가고자 하는 것의 뚜렷함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지나갔지만
타워 팰리스를 지나 다시 되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로서도 오랜만 이어서 둑길이 마냥 좋았습니다.
얼굴은 세월과 함께 깊이가 더해지고 모두 각자의 집안 내력으로 닮아가나 봅니다.
주승이 형도 처제 보고 장모님을 닮았다고 하더랍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이 기억하는 방심 어머님 얼굴이 이제야 그네에게서 묻어나네요.
향재를 챙겨주는 병대가 그래도 우리들 중 가장 낫다고 합니다.
물론 가까운 곳에 있지만 사람을 친밀하게 대하는 그의 자상함이 돋보이는 것이라 생각 듭니다.
실로 많은 회상이 양재천을 흐르는 물처럼 너울집니다.
가로등이 켜지고 낮에는 벗었던 웃옷을 어깨에 두르게 하는 천변 야외무대.
여럿이서 연주하는 기타 소리와 합창으로 함께하는 노래는 천변의 경쾌한 선율이었습니다.
메인 보컬 없이도 그들은 충분히 산책객을 붙잡았으며 박수를 받았습니다.
다시 언제쯤 이런 기회가 올는지
이제 가물거리는 추억으로 남겨지는 것은 그날 토요일 오후의 얼굴들 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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