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에서 버스를 내렸다.
북악의 성곽길을 걷고자 작정하고서 길 나섰던 참이었다.
길상사까지 가볼까, 그리 하고서....
경복궁이 내려다 보이는 윤동주 언덕에서
[겸재 정선]의 북악을 주봉으로 한 그림 한 점과 [윤동주] 시인의 시 <서시>를 읽었다.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1941)
인왕산 자락에서 살았다던 겸재의 그림과
북간도에서 태어나 일제 말기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시인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진 윤동주 언덕에서
해방돼 든 해 1945년 2월 16일,
독립운동 협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던 중 29세의 젊은 나이로 이국 땅 차디찬 감옥 속에서 생을 마감한
민족시인 인 그의 순결한 문학정신을 되새겼다.
처음의 북악 성곽길을 마다하고 인왕산을 오르면서 경복궁과 남산을 내려다보았다.
광화문 앞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북과 꽹과리 소리가 신명 나게 전해져 오는데 너무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소망하였던 그 순백의 영혼을 지울 수 없었다.
가슴 1
소리 없는 북,
답답하면 주먹으로뚜다려 보오.
그래 봐도 후―
가아는후―
한숨보다 못하오.
(1936)
가슴 2
불 꺼진 화독을 안고 도는
겨울밤은 깊었다.
재만 남은 가슴이
문풍지 소리에 떤다.
(1936)
그 여자
함께 핀 꽃에
처음 익은 능금은
먼저 떨어졌습니다.
오늘도 가을바람은
그냥 붑니다.
길가에 떨어진 붉은 능금은
지나는 손님이 집어갔습니다.
(1939)
6월의 초입인데 목단꽃은 지고 씨방이 맺혀 있었다.
소나무 무성한 산등성이 따라 성곽이 복원돼 있고 멀리 구름 속에서 도봉산과 북한산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인왕에서 마주 보이는 아차산의 푸르름이 도심 같지가 않고 한강은 굽이쳐 흐르고 있다.
지고 있는 잔잔한 산꽃 송이에서 집사람이 건드렸는지 향기가 갑자기 확 풍겨왔다.
영천 쪽이 싫다 하여 수성동 계곡 쪽으로 하산하여 적선동에서 막걸리를 한 사발 마시면서
오랜만에 찾아본 이곳 동네의 풍경이 그대로 있음이 왠지 정겹지마는 않는 것은 궁핍함이 예전과 다름없어서 일 것이다.
걷고 걸으면서 거리를 간직하고 사람을 구경한다.
돌이 쌓여있고, 나무(목재)가 귀를 맞추고 있다.
푸른 식물이 자라고 꽃은 피어나 햇살이 빛을 발한다.
돌담길이 그대로이지만 변모되어가는 거리의 풍경이 이렇게 좋게 느껴진다.
허지만 시청 신청사는 쓰레기이고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저게 건축물인가?
6월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