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 인화(우희) / 양귀비
패왕별희
ㅣ 쉰세(53) 개의 글자
기원전 202년 12월 동으로 돌아가던 초(楚)의 항우(項羽)가 한의 대군에게 쫓겨 해하(垓下 / 안휘성 동남)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초의 군대는 이미 사기가 떨어져 있고 식량도 바닥이 나 있었다.
더구나 성 주위는 한군에 의해 겹겹이 포위당해 있었다.
그 밤에 한군 진영에서는 사방으로 초나라의 슬픈 노래가 들렸다.
그 노래 소리는 항우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고향 노래인 초의 민요였기 때문이다.
항우는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점령했다는 말인가, 어째서 초나라 사람이 이토록 많은가"
하고 슬퍼 하였다.
항우뿐이 아니었다.
초군의 병사들도 모두 향수에 젖어들었다.
그래서 그리운 고향의 노래를 무심코 따라 부르자, 두고 온 가족들과 고향 생각하며 우는 자가 잇달았다.
이것은 한나라 고조(유방)가 꾸며낸 심리작전으로, [사면초가]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항왕은 일어나 장막 안으로 들어가서 결별 연을 열었다.
항왕에게는 한 시도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 우희(虞姬)라는 애첩이 있었으며
또한 오추(烏騅)라는 이름의 애마도 있었다.
마음이 울적해진 한왕은 즉흥시 한 수 를 읊으며 마음을 달랬다.
[해하가 / 垓下歌]다.
力拔山兮氣蓋世 역발산혜기개세
時不利兮騅不逝 시부리혜추부서
騅不逝兮可奈何 추부서혜가나하
虞兮虞兮奈若何 우혜우혜나야하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었는데
시세가 불리하고 오추마도 떠나려 하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떠나려 하지 않으니 어찌 하리오
우야, 우야, 내 너를 어찌할거나.
항왕이 반복해서 몇 번 노래하자,
우미인도 이별의 슬픔을 가득 담고 애절하게 화답했다.
항왕의 빰 위에는 굵은 눈물이 흘렀다.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도 그 앞에 엎드려 소리 없이 흐느끼며 쳐다보지를 못했다.
우희도 화답가를 불렀다.
漢兵己락地 한병가락지
四面楚歌聲 사면초가성
大王意氣盡 대왕의기진
贱妾何聊生 천첩하료생
한나라 군대는 이미 땅을 차지했지만
사방에서 초가 소리뿐
대왕의 운이 다 되었거든
천한 첩이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우미인도 항우의 품에서 자결하고,
항우 역시 다음날 오강(烏江)에서 자결했으니 그의 나이 31세였다.
고향이 그리워 오강까지 달려갔으나 패군 지장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결한 것이다.
무 면도 강동(無面渡江東)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무 면도 강동,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면목이 없는 그런 경우를 가리켜 [무 면도 강동]이란 문자를 쓴다.
마지막 싸움에 패하고 단신으로 오강까지 도망쳐 온 항우(項羽)가 자살하기에 앞서 나온 말이다.
[강동을 건너갈 면목이 없다]는 뜻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한나라 군사에 포위된 해하(垓下)에 버티고 있던 항우는
휘하 장수 팔백여 명을 거느리고 어두운 밤을 타서 적의 포위를 뚫고 탈출하게 된다.
항우는 양자강을 건널 생각으로 오강까지 왔다.
오강 정장(亭長)이 배를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정장(사공)은 말하였다.
"강동이 좁다고 하지만 그래도 사방 천리 땅에 인구가 수 십만에 달합니다.
여기서 재기할 수가 있으니 어서 건너십시오.
현재 배를 가진 사람은 소인 한 사람밖에 없으므로 한나라 군사가 건너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항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그렇게 하지 않았다.
天之亡我 천지망아
我何渡爲 아하도위
且籍與江東子弟 차적여강동자제
八千人渡江而西 팔천인도강이서
令無一人還 령무일인환
縱江東父兄 종강동부형
憐而王我 련이왕아
我何面目見之 아하면목견지
縱波不信 종파불신
籍獨不傀於心乎 적독불괴어심호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다.
내 어찌 강을 건너랴?.
강동 사람들은 그들의 자제 팔천 명을 내게 맡겨 서쪽을 정벌하러 가게 했다.
이제 그들의 자제 가운데 아무도 생환하여 돌아가는 자가 없게 되었다.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다시 왕으로 섬겨 준다고 해도
나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볼 수 있으리오.
설령 그들이 내게 아무런 말을 않는다고 해도
내 스스로 마음이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 쉰세 개의 글자에는 피보다도 더 붉은 감정이 아로새겨져 있다.
한 획 한 획 아로새겨진 그 비통한 심경의 절규는 언어를 뛰어넘고 있다.
초패왕은 서른한 살이었다.
밤이었고 오강에는 비가 오고 있다.
자기를 믿고 자기에게 모든 것을 바친 여자를 잃은 사내,
혼자 목숨을 구해 도망친 남자.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남자가 검은 강물 앞에 서 있다.
그날 하루 동안 그는 지옥을 지나온 것이다.
암흑의 하늘에 회오리바람이 불고 빗발이 그를 적시고 있다.
그 어두운 정경을 떠 올리면서
마지막 칼을 자신을 향해 들었을 한 남자의 남겨진 쉰세(53) 자(字)는 진정,
사나이의 말이었다.
한군이 곧 접근해 왔다.
이미 일각의 여유도 없다.
항우는 애마를 사공에 주고, 겨우 부하 몇 명과 함께 걸으며 오히려 한군 속으로 들어갔다.
장열 하고도 처참한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항우는 몸에 십 수 군데 상처를 입었다.
그도 한나라 군사 수 백 명을 죽였다.
일대 영웅 [楚의 覇王]도 이제 한군의 수 십 겹 포위를 뚫고 도망칠 수 없었다.
당대 패권을 다투던 영웅 항우는 스스로 목을 베어 이렇게 한 시대를 마감하였다.
<사기> 항우 본기 / 項羽本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