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1
ㅣ 전라도가 「하와이」로 불리게 된 사연
해방이 되고 나서 남쪽의 제일 큰 정적 두 사람은 이승만과 김구였다.
이승만은 미군정의 도움을 받으며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고 있었고,
김구는 민족을 분단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반대하며 서로 팽팽하게 맞섰다.
그런데 김구는 미군정의 지지를 못 받는 입장이니까 그 대신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전국 순회강연을 나섰다.
김구는 가는 지방마다 환영을 받았는데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는 그 환영이 아주 열렬했다.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강연은 큰 도시에서만 하게 되어 있었는데, 작은 군에서 몰려나와 겹겹이 기찻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김구는 예정에 없던 강연을 하고서야 기차가 움직일 지경이 되었다.
그런 동태가 이승만에게 빠짐없이 보고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보고를 다 받은 이승만이 기분이 나빠져 한마디 내뱉은 것이 "하와이 놈들 같으니라고"였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일제 강점기에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한다고 미국 본토에 있다가 나중에 우리 동포들이 많은 하와이로 옮겨왔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미 박용만이라는 사람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우리 동포들을 모아 독립투쟁을 할 군인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독립군보다는 외교 능력으로 독립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와이에 가자마자 박용만과 대립하기 시작했는데 여성과 기독교를 앞세워 세를 장악하고 하와이 동포들이 낸 독립자금을 개인이 착복했다.
이에 분개한 동포들이 두 사람을 따라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이승만 쪽에 몇 사람이 남지 않게 되어 이승만은 궁지에 몰리고 박용만 쪽으로 쏠린 동포들에게 감정이 많았었는데,
김구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전라도 사람들이 옛날 하와이 동포들처럼 보여 "하와이 놈들 같으니라고!" 한 것이다.
그다음부터 전라도 사람들을「하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 12년 동안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나쁜 인식을 전국적으로 퍼뜨리고 차별한 것이 그 이후 지금까지 각 정권마다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박정희 정권의 18년, 지역개발 차별과 인사차 별에 이어 반공을 앞세운 빨갱이로 얽어매는 독재로 전라도는 가난과 공포에 떨었으며,
전두환 정권의 광주학살로 전라도는 숫한 생명을 잃었다.
노태우, 김영삼 정권하에서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경상도 대 전라도의 정치 대립과 전라도의 푸대접이 상반된 각을 세웠으며,
김대중 정권의 호남 역차별로 전라도는 또 한 번의 실망을 맛보았고,
노무현 정권의 열린 우리당 배신으로 전라도는 정치적 쇠락을 가져왔으며,
이명박 정권의 강력한 정치권력에 의해 전국 구도는 「전라도 대 경상도」에서 「호남 대 비호남」으로 정치권력이 재편되었다.
박근혜 정권에 들어와서 전라도는 안중에도 없으며 새누리당은 오히려 전라도의 정치적 재기를 방해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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