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9
자야오가 4수 당나라 시인 [달과 술의 연인] 이백
자야오가 1
- 뽕따는 여인
푸른 냇물 가에서
뽕을 따는 여인이여
당신은 너무나 곱구나
푸른 가지 휘어잡은 솜같이 흰 손이며
꽃인 듯 드러나는 붉은 그 볼
그러나 차가운 말 한마디 남겨 놓고
여인은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빨리 가서 누에에게 뽕을 주어야 해요
원님도 얼른 돌아가세요
*
자야오가 2
- 연 뜯는 여인
삼백리나 되는 경호의 물은
연꽃으로 뒤덮이고 말았습니다
연 뜯는 서시가 어찌 고운지
구경꾼은 언덕에 구름 같습니다
달도 뜨기를 기다리지 않고
배 저어 월왕에게 돌아가다니....
*
자야오가 3
- 다듬이 질
조각달이 서울(장안)을 희미해 비추고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 섧게 울립니다
가을바람인들 어찌 무심히 듣겠어요
다 그리움을 돕는 것뿐입니다
어느 날에나 오랑캐 무찌르고
임은 옥관에서 돌아올지요
*
자야오가 4
- 바느질
내일 아침이면 인편이 있다기에
밤을 도와 가며 솜옷을 짓습니다
바늘과 가위 잡은 손 얼어 드는
참으로 참으로 추운 밤입니다
만들어서 부치기야 한다지만
언제나 그곳에 닿을는지요
*
백석 (본명 백기행, 고향 평안북도 정주)이 26세에 함흥 영생고보에 교사로 부임하여 함흥에 있을 때
기생집에서 함흥 권번의 기생 진향 (본명 김영한)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백석은 진향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에서 자야오가에 등장하는 여인, 자야를 그의 이름으로 지어준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그 해 1936년과 다음 해까지 함흥에서 사랑에 취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지낸다.
1937년 겨울방학,
동아일보 객원기자로 경성으로 이사 간 아버지의 부름으로 경성에 갔던 백석은 부모의 강요로 결혼을 하고
혼자서 함흥으로 와 자야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며 만주로 가자고 꼬드긴다.
만주로 가자는 백석의 제안을 자야는 거부했다.
자야는 혼자 짐을 꾸려 백석 몰래 경성으로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1938년 초 봄에 청진동에 집을 마련했다.
그게 백석과 그녀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백석은 끝내 청진동 집을 찾아와 하룻밤을 보내고 함흥으로 떠나면서 자야에게 누런 미농 지봉 투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백석이 자야에게 쓴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들어 있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은 해방 후 조만식 선생의 부름으로 평양으로 불려 가 러시아 번역과 통역을 하며 지낸다.
백석은 한국전쟁 이후 평양에 있었고,
자야는 피난지 부산에서 요릿집을 열어 유명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명성과 부를 움켜쥔다.
그 후 서울 성북동에 대원각을 차려 큰돈을 벌었다.
월북시인으로 낙인이 찍힌 백석의 시는 남한에서 금서가 되었고 이름도 부르지 못하게 했다.
자야는 돈을 벌어 백석에게 주고 싶었다.
가난에서 벗어나 마음껏 시 세계를 휘젓고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고 백석을 만난다는 사실이 희박해졌을 때 (백석 사망 1996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자야는 조계종 법정스님께 대원각을 기부했다 (1997년)
삼각산 기슭의 물 좋은 골짜기에 대지 7000평, 건물 40 여동을 돈 천억 보다도 백석의 시 한 수가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며 기꺼이 희사한 것이다.
법정은 (고향 해남 우수영) 자야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지어 주었다.
그렇게 해서 대원각은 길상사가 되고 법정이 죽고 난 후 법정의 손수 만든 의자는 길상사와 함께 그 자리에 있다.
시인과 기생의 사랑,
백석과 진향이의 흔적은 길상사에도, 교과서에도, 뮤지컬에도, 서점에서도, 모든 곳에 스미어 있어
서글프지만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자야(본명 김영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쓰여 있는 시구처럼 눈이 많이 오는 날 자기 유골을 뿌려 달라고 유언을 했다.
그래서 길상화 전각이 있는 언덕에 첫눈이 오는 날 뿌려 주었다. (1999년)
백석의 시는 스토리가 있다.
시를 읽다 보면 그 전개되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냥 그려진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소개된 [여승]도 그러하다.
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냄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귀 산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 같이 차게 울었다
섶 벌같이 나가던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가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 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