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3
서강의 영월 선암마을에서 뗏목을 타고서 한반도 지형을 한 바퀴 둘러봤다.
물에 발을 담그고 한가로이 여행을 즐기고 있지만 아우라지 정선의 아리랑 가락이 귀에 들리는 듯, 한 서린 여인내의 설음 또한 묻어나기도 했다.
*
각 골짝의 아름드리나무들이 모여들어 뗏목으로 엮어져 한양도성의 마포나루를 향해 3,4개월의 항해를 시작하는 곳, 뗏목은 수십 미터의 길이로 엮어서 선단을 이루고 강물이 차오르면 꿈꾸듯 항해를 시작하는데 여인내는 굽이돌아 지아비가 아니 보일 때까지 옷고름 휘저으며 눈물 훔치고 돌아서야 했던 모래강변....
그 설움의 배웅 뒤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있었으니
제발 오늘의 이 배웅이 영원한 이별로 이어지지 않기를 빌고 또 비는 마음에서다.
하나는,
물길로 남양주 양수리까지 닿기 전까지는 굽이굽이 계곡마다 급류와 탁류가 휘몰아치고 비와 바람이 거세어져 항해를 하다 사고사로 급 이별하는 것이고
둘은,
마포나루의 깊고 깊은 샘인 탓이다.
예부터 소금장수와 새우젓 장수가 하는 말이 마포나루의 계집들은 그 샘이 얼마나 깊은지 퍼도 퍼도 끝이 없고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를 않는다 했는데,
강원도 산골의 깊고 깊은 산 중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도성에 와 한 뭉텅이 손에 쥐었으니 한양의 분내 풍기는 하얀 계집들의 속살이 발걸음을 옭아맬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산골짝의 저 멀리 좁은 파란 하늘도 나의 것이고
봉우리마다 피어오르는 저 구름도 나의 것인데
엊저녁에 한 이불을 덮고 자던 너는 이리 떠나면 내 것이 아니더란 말인가.
아서라 ㅡ
들꽂처럼 가냘퍼도 외로이 피어나는 산꽃이기에
내 어찌 너를 모를쏘냐.
비바람에 계곡물이 솟구치고 협곡의 바위에 온몸이 부딪쳐도 너는 나의 꽃이고
분향 풍기며 산해진미를 차려줘도
강냉이 막걸리에 수줍은 웃음, 입가에 그리던 너는 내 여자이다.
*
세상은 노 저어 가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삶이 그랬다.
몸이 영글지도 않았고 철들지도 않았지만 봄이라고 찰밥 해서 떡도 하고 노 저어 꽃섬으로 친구들이 놀러 갔다.
중학교 때는 해우 발 마장 박을 때 노잡이를 하며 좁은 배 위에서 아버지를 뒤돌아 막걸리도 마셨다.
대발을 앞도 안 보이게 가득하게 싣고서 노 저어 칼쾡이낭바끝 급물살을 돌아 백일도 음지깥에 해우부착을 하던 것도 삶의 일부였다.
삶의 긴 항해는 지금까지 이어지지만
정작 노 젓는 일은 영전을 떠난 이 후 기회가 없었다.
그 기회가 왔다.
한반도 지형의 선암마을에서 그동안 잡아보지 못했던 묵직한 조선노의 물살 가르는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건 교감이다.
물과 선체와 나의 울림이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라.
세상을 젓는 것이다.
앙상하게 뼈만 남아 있어도 햇살은 너무 찬란하며
부질없이 흘려보낸 세월이었어도 산하는 녹음에 짙어지고 사람들은 건강한 웃음과 대자연의 경이에 놀랍고 감사해하는 것을.
서강이 유유히 흐른다.
비 온 뒤의 강물이라서 맑지가 못하지만 이제 단풍이 물들고 온 산이 울긋불긋해지면 강물도 차고 맑아 수미터 깊이의 자갈까지 보인다고 한다.
겨울에는 깊게 얼어 썰매를 탄다고 하니 꽃피는 봄까지 서강은 사계를 품고서 삶의 이야기들을 노 저어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이다.
가는 인생,
그냥 흐르는 것일까?.
덧없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