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17
일요일,
스산한 비가 서울의 거리를 적시고 있습니다.
결혼식 참석의 외출에서 돌아와 법정스님의 맑고 빛나는 문장들을 어느 시인의 눈으로 다시 읽는
'법정 마음의 온도'를 펼치며 새삼 스러이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라는 명언을 되새겨 봅니다.
그러면서 <수선 다섯 뿌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 무심히 꽃을 대하고 있으면 어느새 자기 자신도 꽃이 될 수 있다」
는 문장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심한 꽃속에 나의 마음도 꽃이 되어......
딸아이의 가계로 가는 도곡동 주택가 어느 카페 앞에는 장두 감이 탐스럽게 익어 발갛게 가을의 색을 뽐내고 있습니다.
계절은 겨울로 치닫고 있는데 감잎까지 물들어도 주인은 한 개의 감도 따지를 않습니다.
무심히 알이 잘 배긴 씨알의 감을 보면서 알차고 풍성한 결실의 온도를 느낍니다.
풍요가 주는 넉넉함이랄까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태생의 감성을 온몸으로 느끼며 시골집 담장 옆 감나무에 매달려 감을
따먹던 아스라한 추억이 포근함으로 밀려듭니다.
도시에서 성장한 사람은 평생을 가도 느낄 수 없는 마음은 그렇게 스스로 열리는 것 같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면서 그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을 얻겠습니까?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맑았으면 하고 나를 채찍질합니다.
♪
오늘은 고향 선배님들을 여럿 뵈었습니다.
시간을 비껴가지 못해서 모두는 늙었자만 풍상의 세월을 살아온 패기는 여전한 것 같고
술도 좋아하는 것이 예전과 변함없습니다.
같이 잔을 나누지 못해 미안하고 내가 건강하지 못해서 대화의 단순함으로 자리가 이어졌지만 느끼는 정이야 그대로 이
함께 한다는 것이 매우 좋았습니다.
올 연말에는 다시 모이자는 약속으로 겨울비가 내리는 우산 속에서 헤어지는 발걸음들이 모두 가벼웠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회색의 거리에 조명 불들이 빗속으로 뿜어져 나오는데 건대 부근의 골목들은 붐비고 있었습니다.
시골 같으면 돼지다리 하나 삶아놓고 술추렴 하기 딱 좋은 시기입니다.
그런 가정으로 이 시간 짓누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