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에 젖어.

한가위.

홍률 2011. 9. 13. 18:32

 

 

 

서둘러 차례를 지내고

도시의 명절을 도곡동으로 가 누님과 함께했다.

 

40㎝가 넘는 30년 이상의 도라지 술을 자형은 아까워하면서도 내어 놓았다.

겨울이 오는쯤 해서 드시려고, 금년의 겨울나기라고 하시면서...

어느 해 적상산의 봉룡을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무주 어느 분의 성의와 함께 보약을 먹듯이 집안에 퍼지는 술향마저도 아까워 남김없이 커다란 병을 비웠다.

 

여럿이서 나누는 술잔이

취기가 젖어드는 이 정겨움이 바로 명절인것을, 하니

떡이 있고

잘 저며진 음식이 있으며

적당히 말려 노릇하게 구워진 생선은 햇과일 속에서도 입맛을 돋구고

웃음소리 그치지 않는, 오랜만의  이야기 속에 도라지 술은 다른 값비싼 술을 멀리하게 했다. 

 

뱃속은 적당히 따뜻해서

추석은 풍경도 있는 것, 十五夜의 밤 풍경을 맞이하고자 시간을 때워야겠기에 남산골로 향했다.

대한극장의 추억이 감동실화 한 편의 영화 관람으로 이어지고

다소 인위적이었지만 실화를 재조명한 스토리는 잔잔한 감동으로 눈가를 적시었다.

 

퇴계로에 어둠이 찾아들고 남산골의 조명은 명절의 인파와 함께 은은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한옥의 처마선이 소나무 사이로 검게 나타나고

봉창 문의 빗살이 조명 빛에 드러나며 창호지의 여운은 아직 쌀쌀하지 않아도 푸근히 느껴졌다.

잘 정돈된 뜰악의 댓돌들이 한옥이기에 운치 있고

모과나무 모과도 아직은 푸르지만 있을 곳에 있다고 생각 들어

옆의 앉은뱅이 소나무와, 푸른 잎의 무궁화도, 보는 이의 상상을 그림으로 유도했다.

목화밭이 소담하게 가꿔있고 다래가 맺혀 있었다.

미영 꽃 한 송이 넷 쪽으로 열려 하얀 속살이 부끄럽게 드러나고 햇살 좋은 며칠 후면 하얀 솜 부플리겠지.

 

충무로는 한가하니 추석이라 실감 나고

불빛 밝은 어느 쇼윈도 아래, 주인은 경쾌한 음악을 선사하고 있었다.

비록 음향이었지만 길손은 흥겹고 발걸음 가벼이 눈웃음 나누었다.

도심의 인사이며, 묻어나는 한가위 분위기였다.

 

강남의 가로등 조명탑은 갖가지 프로그램으로 거리를 연출하고

방금 지나쳐온 남산의 야경이 먼 거리의 풍경처럼 삽시간에 변화되어 거리는 젊어진 모습이었다.

도시의 의상과,

도시의 연인들은

또 다른 도시의 명절을 향유하고

그들에 맞는 한가위를 저처럼 흥겹게 보내고 있다.

 

하루의 여정이고,

고향이 아니면은 가볍게 생각 키던 추석날도,

그래도 저물어 밤은 살랑거리는 가을바람이 있었다.

오랜만에 형제들과 한 곳에 모인 딸애들은 오빠와 같이 도심의 드라이브 코스를 휘젓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들에게 풀냄새 풍기는 논둑길의 향수가 있다면

그들은 음악이 내뿜는 자동차의 굉음이 즐거움인가 보다.

 

이제 TV 앞에 하루를 뉘이고

지금은 강남역 어디선가 맥주잔을 부딪치는 애들의 귀가를 종용하는 전화소리를 곁에 들으며

금년의 한가위도 이렇게 깊어가는 밤으로 흘러 보내야 하고 술향이 가시지 않은 피로가 무척이나 좋아 밤하늘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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