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

가을여행

홍률 2019. 1. 3. 16:37

 

 

 

 

 

2018. 11. 12

 

 

 

 

 

입동이 지났으니 이미 겨울로 접어든 계절.

청명하지 못한 날씨 속에서 설악산의 위엄은 입구의 입진 나무 사이로 희미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아직은 단풍이 남아 있어서 쓸쓸함이 더 했지만 난 설악의 입구가 왠지 좋습니다.

강원도의 어느 산골처럼 그렇게 똑같이 전개되던 풍경이

갑자기 입구의 좌측으로부터 형상이 다르게 펼쳐지기 시작하고

그 압도적인 모습이 너무나 매혹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순자도 이런 감흥 때문에 설악 입구를 보고 싶다고 했을까요?

설악의 품속으로 빠져들기 전 초입의 은밀한 속삭임을 듣는 것 같은 매력입니다.

 

그렇게 펼쳐지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떠나온다는 것이 차마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이상한 세계의 산행을 싫어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무한 풍경의 설악 골짜기에서 평범한 도로 위의 지루한 여정으로 돌아섰습니다.

 

 

 

 

 

 

 

 

곰돌이 푸우의 익살이 연상되는 나무 타는 곰의 조형물입니다.

일성이는 브이자를 그리고 있네요.

기념비적인 남는 모습은 사진입니다.

친구의 사진을 찍어 주면서 나도 찍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일었지만 병약해진 앙상한 모습을 사진으로 보는 것이 두려워 그만두었습니다.

 

 

 

*

 

 

 

흐린 날씨 때문에 화진포와 통일전망대의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못내 아쉽습니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화진포의 이승만 별장과 김일성 별장을 보면서

개화기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외국의 선교사나 외교사들이 석호 주변의 경치에 반해

자리를 먼저 잡았다고 했는데 역시 아름다운 풍광이었습니다.

한없이 펼쳐지는 모래사장과 육지 안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 석호를 이루고 있는 그 아늑한 경치는 동해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입니다.

 

군사정권의 진한 색채가 남아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역사적 인물의 평가가 쉽게 이루어지고 왜곡되게 비치는 것도 그 일부가 군사정권의 적패가 아닌가 싶습니다.

 

화진포 지명유래의 전설이 전해진대로 한다면

이화진 아가씨 부친의 구두쇠 이야기는 여타 강원도의 또 다른 구두쇠 이야기와 겹쳐

강원지역의 세속적 삶의 고단 함을 알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기대 속에 통일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는 금강산은 뿌옇게 스카이라인만 간신히 보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금강의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하루빨리 남북의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기를 바라며

끊어진 재진 역의 팻말을 보면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

 

 

 

가진의 깨끗한 숙소와 어촌의 부둣가 풍경이 정겨웠지만

관광객 때문인지 상흔으로 대하는 상가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곳이 진영이의 고향이며 정보부의 모진 고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향을  떠야 했던 그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그의 자취도 인간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 회상되었습니다.

 

요즘 병대는 손주 자랑에 푹 빠져 있습니다.

가진 포구에 나가 생선회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와 나누는 이야기 속에 손주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배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늘그막에 안정감을 찾은 생활이 그로 하여금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고 술값도 내는데 마음의 여유라 생각합니다.

친구사이는 그래서 좋습니다.

여유로운 자의 거만함이 아닌 진솔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사람 사는 맛을 느낍니다.

 

그래서 나를 되돌아봅니다.

빛을 발해야 할 때 멈춰버린 나의 생활이 얼마나 어리석고 통탄스러운지?

그러나 외롭지 않은 인생이기를 늘 갈망합니다.

 

 

 

 

 

 

 

 

 

낙산사 홍예문의 복원된 모습입니다.

공사 중에 왔다  가기를 두어 번 이제 완성된 모습을 보게 되는데 소박하니 아름답습니다.

아취형의 출입구가 일품인데요

아취석의 하나하나가 강원도 26개 고을의 군수들 기부에 의해 쌓아 졌다고 합니다.

 

 

 

 

 

 

 

당신이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양양 낙산사 산불에서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홍련암!

그래서였을까요.

행복이라는 단어가 크나큰 배부름으로 포만감을 안겨주는 건 우리의 기쁨입니다.

 

불타고 난 후의 낙산사가

이만큼의 큰 가람으로 재탄생한 것은 바로 행복입니다.

낙산사의 진정한 목소리는

 

당신이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팔각정은 불탔지만 고고한 소나무는 살아남아 낙산사 최고의 포토존이 되었습니다.

 

 

 

 

 

 

 

해풍에 밀려오는

풍경소리

 

당신은 아는가

거친 바다 사내의 구애를

 

고독한 밤의 기도 속에서

아낙의 가슴 졸이는 숨소리로

 

동해의 풍랑은

연꽃의 자비를 탐하지만

 

붉은 연정은

서로가 외로워

 

풍경소리

처마 끝에서 떠날 줄 모르네

 

 

 

 

 

 

 

단청의 연속성

그 끝 언저리에 외로이 서있는

 

의상대 소나무

 

홍련암을 보고 되돌아 나오다

계단에서 접하는 구도

 

누구 더 있어

감탄하지 않겠는가.

 

 

 

 

 

 

 

천지 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는가.

 

 

 

*

 

 

 

바다에서의 일출이 그렇듯

거대하고 크나큰 불기둥이 무작정 솟아오른다.

바닷물이 검붉은 빛깔 속에서 일렁이고

가슴속은 나도 모르게 달아 올라

 

오,

오 ㅡ

외치다

어느덧 붉은 해가 되었다.

 

전율은 오랫동안 일어

붉은 열정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의상대의 포토존

멀리 홍연암이 보입니다.

 

 

 

 

 

 

 

국수공양에 글귀가 있어 사진에 담았습니다.

 

무료공양이라 밖에 써 놓고

먹는 자가 내(자신의)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다 했는데

절간에서 잘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낸 팻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뭇 중생들의 덕행으로

낙산사가 큰 가람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절집에서 국수 한 가락 퍼주면서

보약 운운하면서 깨달음을 얻으라니

불도의 자비는 어디로 가고

대자연의 순리는 어디에서 찾는가.

 

오고,

감의 이치가 육도윤회 속에서 이루어진다 해놓고

찰나의 국수공양 한 사발 속에서도 그 공을 나타내려 함인가.

 

절간은 주인이 아닐세.

 

 

 

 

 

 

 

 

 

정동진

 

모래시계의 감동으로 재 탄생한 이름.

이름만큼 이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강릉시의 무능한 행정력이 만들어낸 실망스러운 관광지의 참모습,

차라리 뜸한 발걸음으로 모래시계의 감동을 영원히 간직했으면 하는 여운이 남았습니다.

 

부채 길을 왜 만들었을까?

사람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서였다면 고민하는 흔적이라도 보이면서 산책길을 만들었어야지

행정의 편의상 예산을 집행하고 관광객의 유치만 욕심내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공원, 등산로, 산책길 같은 남녀노소가 공히 이용하는 길은 설계의 로드맵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와 같은 산책길의 폭이나 계단의 단수 치는 우리 생활 속에 뿌리 박힌 일제의 잔재 치수라 생각 듭니다.

검소하고 짜임새 있고 딱 맞춰진 틀 안에서 아기자기한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과거의 유형에서 벗어나

이제는 시원스레 뻗어나가는 답답하지 않으면서 확 뚫리는 결과물이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현저히 변해버린 신체인 만큼 변한 인체치수로써 설계를 하여 건강하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남성과 여성,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 즐겁게 걸을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등산가방을 메고 걷는 오고 감의 폭,

남녀노소가 오르내리면서도 보폭에 무리가 가지 않은 계단 치수,

이제는 과감히 개선하여도 우리의 환경은 그 역량이 되었다고 봅니다.

등산로, 산책길의 폭이 1500 정도는 돼야 하고, 계단의 단치수는 높이 ×챌판이 150 ×350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채 길을 돌아 리조트 주차장에서 걸어 내려와 조희정 횟집에서 물회와 회덮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일행의 행동들이 일치되지 않아 더러 많이 기다리고 지치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우리 친구들의 배려심과 이해심을 높게 평가했는데,

그렇지 ㅡ,

이게 친구다.

누구 한 마디라도 불만을 내비치고 고성이 오갈만하건만 그저 묵묵하니 암묵적으로 행동합니다.

서로를 감싸는 그 어루만짐이 없었다면 오늘까지 이런 자리가 남아 있었을까 반문해 본 새삼스러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밥값을 지불하는 일성이나

그걸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나나

우리는 살만큼 살았고 사람 냄새 풍기는 연령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숙소에서 총무가 하는 말이 모두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회비가 고갈이 되면 그만두려고 하는데 매회마다 다시 채워지고 다시 채워지니 다시 모이는 거라면서

각자의 성의가 우리 모임의 주체로써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 했습니다.

특히나 여성회원들의 먹거리는 우리의 크나큰 행복입니다.

 

강인한 남성상의 바위입니다.

안내판에는 투구바위로 명명되었는데 난 동해의 거센 바람과 풍랑을 이겨낸 거친 사내의 숨소리를 느꼈고 태산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변함없이 강인한이지로 이 바위처럼 굳건하기를 바라면서

감사하고 고마운 가을여행의 여정을 마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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