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에 젖어.

누이야 두보가 되렴.

홍률 2009. 7. 10. 18:22

 

 

 

허 난설헌 (許 蘭雪軒   1563 ㅡ 1589)

       

    이름은    초희 (楚姬)

    자는       경번 (景樊)

 

가위

 

뜻이 맞아 두 허리를 합하고

다정스레 두 다리를 쳐들었소

흔드는 것은 내가 할 테니

깊고 얕은 건 당신 맘대로.

 

가위와 남녀의 성교 장면을 겹쳐 놓았다. 난설헌의 재주와 뛰어난 시성을 시기한 조선시대 남성 문학 비평가들이 심한 반감을 드러내

장난에 가까운 이 시를 굳이 찾아내 부각하거나 그녀와 상관없는 시를 슬그머니 그녀의 작품으로 끼워 넣도록 했다 는 추측이 있으나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화집 에는  허 난설헌의 작품이라고 되어있다 는 점이다.

 

연밥 따는 노래

 

맑고 넓은 가을 호수 벽옥 같은 물

연꽃 깊은 곳에 목란 배 매어놓고

임 만나자 물 건너 연밥 던지다

멀리 남에게 들켜 반나절 부끄러웠네.

 

자신이  유혹해 놓고 부끄러워 빨개져버린 어린 처녀의 연정을 그리고 있다.

 

그네 노래

 

그네뛰기 마치곤 수놓은 신 고쳐 신었죠

내려와선 말도 못 하고 층계에 서 있었어요

매미 날개 같은 적삼 땀이 촉촉이 배어

떨어진 비녀 주워달라 말하는 것도 잊었죠.

 

살 내가 짙어진다. 한바탕 그네뛰기를 마치고 막 내려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빨갛게 상기된 빰과 더운 사네,

비녀가 빠져버려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땀이 밴 매미 날개처럼 얇은 적삼,

이 사랑스럽고 건강한, 관능적인 살 내 와 숨소리를 난설헌은 묘사하고 있다.

 

서리 맞은 푸른 연꽃

 

달빛 비친 누각, 가을이 가도록 빈 옥 병풍

서리 내린 갈대밭에 내려앉은 저녁 기러기

거문고 한 곡조 타보아도 사람은 뵈지 않고

연꽃만 이울어간다, 들판의 연못에.

 

남편 김성립과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시어머니 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시집살이였다.

어질고 문장이 높았으나, 점차 집안에서 고립되어 갔다. 그것은 학식이나 재능이 남편보다 나았기 때문 일수도 있었다.

어찌하여 오동나무 가지에 도리어 올빼미와 솔개만 깃드는지?라고 

난설헌, 자신을 시기하는 남편의 벗들을 탓하며 행복스럽지 못한 자신의 결혼을 한탄한다.

 

성애의 향기

 

안개가 하늘을 닫아 학도 돌아오지 않고

계수나무 꽃그늘엔 구슬 사립 잠겼네

시냇가엔 종일 신령스러운 비가 내리고

땅에 가득 향기로운 구름 젖어 날지 않는다.

 

남녀의 정욕은 하늘이 낸 것이고, 윤리의 분별은 성인의 가르침이다

하늘도 닫고, 사립도 닫고, 종일토록 나누는 농밀한 운우지정!

하루 내내 신령스러운 비와 향기로운 구름이 얽히고설킨다.

자유분방한 시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은밀하고 기교 있는 성애의 향기이다.

 

아이들을 곡함.

 

작년엔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 또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구나

슬프고 슬픈 강릉 땅

한 쌍 무덤이 마주 보며 솟았다

쉭쉭 바람은 백양나무 잔가지에 불고

도깨비불은 숲 속에서 번쩍인다

지전을 살라 어린 혼을 부르고

술을 따라 남매의 무덤에 붓는다

너희 형제의 혼은

밤마다 만나 서로 놀고 있겠지

뱃속에 아이가 있다만

어찌 고이 자라길 바라겠니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또  부르며

슬픈 피눈물을 속으로 삼킨단다.

 

그녀를 붙들어 매었던 단 하나의 끈은 모성이었던 듯하다, 이 끈이 끊어지자 그 녀도 세상을 버리고 날아갔다.

차가운 서리 달빛 속, 뚝뚝 떨어져 내리는 스물일곱 송이의 붉은 연꽃. 아직도 활짝 핀 꽃, 27세였다.

친정 둘째 오라비 허봉(許封  1551 ㅡ1588) 이 가고 이듬해 뒤 따라갔다. 두보가 되라던 오빠의 다정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못 잊어 였을까?

그녀의 재능을 사랑해 주었고, 그녀의 천재성을 누구보다 기대하여,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친구 이달(李達  1569 ㅡ1618)을

아우 허균 (許筠  1569 ㅡ1618)의 시 선생으로 모셔왔을 때 함께 배우도록 해주었던 오라비였다.

초희! 허 난설헌,

16세기 조선 여성의 자유롭고, 방탕한 영혼 ㅡ

여성의 욕망(欲望)

여성의 성(性)

여성의 꿈(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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