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은 떠 오르고.

형제

홍률 2021. 9. 26. 14:17

 

2019. 7. 7

 

 

 

부산에 사는 셋째 동서가 보고 싶다면서 만나자고 해 둘째네 성환에서 1박 2일을 보냈다.

 

처갓집 쪽으로 세 자매가 모인 셈이다.

넓은 공간에서 고기도 굽고 술도 권하면서 밤이 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냥 좋다.

마냥 좋은 것이다.

형제끼리 만나 서슴없이 웃고 떠들며 집안 사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잡다한 사설들을 나누며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마음에 풍요는 멀리 있는 게 아니고 나의 일상, 내 주변의 사소한 삶에서 얻어지는 것 같다.

 

밤을 세우고 근동의 안성 서운산 청룡사를 갔다.

작년에 화재로 대웅전이 소실되어 복원 공사로 인해 가설 가림막이 들어서 있고 경내는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서운산 줄기는 나지막한 굽이굽이 여러 줄기로 나누어져 크고 작은 골짜기들이 어울려 짙은 녹음으로 아늑하였다.

산세가 고와 평화로운 운치였다.

 

청룡사 가는 우측으로 소나무와 느티나무의 연리근 연리지의 사랑스러운 고목이 자연 그대로 서 있다.

아직은 알려지지 않았는지 바닥도 자연 그대로이 사람 발자국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고 흔한 안내판도 없다.

새삼스럽게 꼭 내가 발견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기우일까?

그러고 보니 좀더 멀리서 나무의 전체 모양을 찍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에게 간을 이식해준 영진이가 아들을 낳았다.

아내는 친손자도 아니면서 무척이나 이뻐하며 무수한 사진도 저장하고 있다.

아마도 친손자를 기다리는 그런 맘이겠지.

 

귀경하면서 신갈쯤인가 경부선 한가운데로 멀리 롯데타워가 보인다.

얼른 사진을 찍었는데 확대해야만 희미하니 보이는 데도 역시 대단하다.

몇 년 후면 현대타워와 나란히 보일 것 같은 구도이다.

서울의 상징물이 이처럼 멀리서까지 잡힌다는 건 그 높이를 증명하는 것일 게다.

 

세 자매가 만나고 동서들이 만났다.

형제들이 만난 것이다.

 

 

 

 

 

 

친가 쪽에도 어느 집안 못지않게 형제들이 많았다.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왕래가 뜸하고 그나마 세상을 등진 사람도 많아 적막한 아쉬움이 감돈다.

 

기운이 왕성하고 즐거웠던 때를 귀경하는 차속에서 파노라마처럼 떠 올려본다.

 

더러 빠진 형제도 있었지만 50명 남짓한 식구들이 갈두(땅끝) 선재의 유람선을 빌려서 보길도와 소안도를 유람한 적도 있었고, 해마다 벌초 때면 작은아버님을 모시고 할아버지 산소 벌초를 마치고서 사구리 횟집에서 상어나 삼치를 배 갈라 먹으면서 집에서 마련한 점심을 가져와 여름 피서를 겸하던 때를 끄집어 내보기도 한다.

 

그래, 어느 해에는 대구 관광객 두 쌍이 우리가 먹는 모습을 떠나지 않고 보고 있길래 내가 같이 드시자고 권했더니

서슴없이 달려들어 달게도 먹으면서 후한 인심에 거듭거듭 감사하며 진짜배기 전라도 음식을 맛있게 먹었노라시며

대구를 들리면 찾아 오라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메모해 주기도 했었다.

 

그런 상념의 늪에서 가고 없는 형제들이 그립다.

 

형이면서 친구로 유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장년기를 함께 했던 화원이는 영원히 내 가슴속에 못을 박힌 존재로 여울져 있다.

 

오늘도 메말라 버린 저수지의 밑바닥 웅덩이 근처까지 파랗게 돋아나는 잡풀을 보면서

마른 땅속에서도 움트는 생명의 질긴 본성을 맞이함이라. 헛되이 보내는 시간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

망울져 움트는 길섶의 작은 풀꽃이 짙은 녹음 속 그늘 밑에서 애처로이 아름답다.

 

구 서방은 말했다.

"형님 건강만 하세요 건강만 챙기신다면 몇 년 후에는 밀양의 어느 골짜기로 들어가 산속에서 형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고마운 말이다.

빈말이라도 형제의 정이 뚝뚝 떨어지는 달콤한 마음씨다.

 

그래, 우리 그렇게 살아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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