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홍률 2021. 12. 31. 12:05

 

 

2019. 12. 8

 

 

 

 

북방에서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았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쏜론이 십릿길을 따러 나와 울던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츰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야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바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시름에 쫒겨

나는 나의 옛 한올로 땅으로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 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쌓이는 밤 흰 당나귀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ㅡ 나와 니타샤와 흰 당나귀 ㅡ

 

 

 

경성 청진동에서 꼭꼭 숨어 지내고 있던 자야에게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온 메신저 보이가 쪽지를 주고 갔다.

수소문 끝에 자야의 집을 알아낸 백석이 보낸 것이었다.

그는 남산 아래 일본인이 경영하는 찻집 구로네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달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청진동 집에서 꿈같은 하룻밤을 보냈다.

 

하지만 백석은 다음 날 출근 때문에 함흥으로 가야 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백석은 자야에게 누런 미농지 봉투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백석이 쓴 시 한 편이 들어 있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였다.

 

 

 

첫눈이 오면 시인 백석이 생각나고

그의 시들이 떠 오르며

그의 연인 자야가 생각납니다.

 

자야는 함흥 번에 기생 진향이었으며, 백석이 함흥에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해 갔을 때 부임 축하로 기생집을 갔는데 첫눈에 반해 백석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자야랑 1936년에 만나 1937년 12월에 아버지의 강요로 서울에서 결혼을 하고 함흥으로 돌아가 둘이서 만주로

도망가자고 했을 때 자야는 백석을 위해 몰래 기차를 타고 경성으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자야의 본명은 김영환이고

법정 스님이 지어준 법명은 길상화입니다.

성북동 길상사는 자야의 요릿집 대원각이었는데 북한에서 백석이 죽은 후 이듬해

'돈 1,000억보다도 시 한 수가 내게는 소중하다'며 법정스님께 기부했습니다.

 

그래서 성북동 골짜기에 길상사가 태워 났습니다.

 

자야는 돌아가시며 유언으로 눈이 내리면 나의 유골을 뿌려달라고 해서 그해 첫눈이 내리던 날 길상사 경내의 길상화 전각이 있는 언덕에 뿌려주었습니다.

 

눈은 백석에게 있어 고향이고 시이며 사랑입니다.

 

눈이 내리면 백석이 생각납니다.

이 겨울 그의 평전을 다시 한번 꺼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승 女僧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금전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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