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홍률 2021. 12. 31. 12:52

 

 

2019. 12. 9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 뜻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를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울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 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이 시가

남한이 잡지에 마지막으로 발표된 것은 1948년 10월 (학풍) 창간호에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다.

 

(학풍)은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하던 종합교양지였으며 

발행인은 윤석중이고 편집국장은 조풍연이 맡고 있었다.

 

이 시는 백석이 해방 전에 써서 허준에게 주었다가 발표한 작품의 하나라는 추측이 있으나

이 시에는 허준의 메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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