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3
백목련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이른 봄입니다.
민들레도 질긴 생명력으로 아스팔트 사이를 헤집고 나와 샛노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움트는 계절에 우리는 또 한 사람의 친구를 영영 이별하였습니다.
안타깝지만 그 친구의 주어진 생에 경의를 표하며 머리 숙여 삼가 명복을 빕니다.
너무나 갑작스런 비보라 고향에 있는 현진, 영신, 영남이는 어젯밤 9시에 진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장례식장에
다녀왔다면서 비통한 심정을 유머러스하게 말하긴 했지만 우리 똑같은 심정으로 너무나 애석합니다.
요즘 동일이의 행보가 매일 평암 선산에 들려 부모의 산소를 돌아 보았다고 하며 어제 아침에도 산소에 다녀와 오후 2시경에 쓰러져 119에 신고하고 119 지시대로 압박 응급조치를 취하며 병원으로 옮겨져 사망했다고 합니다.
인명은 제천이라 현진이의 말처럼 너는 평생 쌀을 몇 가마니 먹고 하늘로 올라 오너라 하고 일생이 정해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동일친구의 지나온 생을 되짚어 보면 후회스러운 삶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神關신관에 있어서 만큼은 어떤 모순된 행적을 보였지 않는가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유일신을 찬양하고 전도하며 교회의 모든 행사를 주관하던 그가
조상을 모시면서 선영을 받드는
두 개의 신관이 그의 내면에서 어떤 작용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관이 아닌 종교적인 관점에서 직시한다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교회는 집단의 이기주의와 조직의 관리주의니까 생활의 방편상 그러할 수 있는 일이고 조상을 섬길 수 있으니까요.
어제는 해남으로 조문을 가려고 준비를 했다가 오늘은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앞 주 수요일에도 매형과 누님을 동작동 국립현충현 충혼당에 모시고 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라 주변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병환 중에 있는 사람이 일일이 상갓집에 가는 게 아니라면서 말려서 말입니다.
매형은 부고를 하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조문은 받지 않습니다' 하고 안내를하여 가족끼리 단출하게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렇게 슬픔은 비가 되어 내리지만 봄날의 화사한 햇볕은 회색의 도시를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는 이 나이에 와서 별다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생의 가치가 무엇이며 부끄럽지 않은 생의 마감은 어떤 것일까?
그 이치를 쫓아 하루하루를 평화롭게 사는 것이 행복하리라 여겨집니다.
이 봄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