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은 떠 오르고. 48

여행 후기

2015. 5. 19 ㅣ 여행 후기 푸른 숲이 어우러지는 차창밖의 풍경을 옆으로 비켜 가면서 남도로 가는 차 안은 매우 경쾌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분위기였는데 무척 좋았습니다. 익산 영효의 둘째아들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의 애쁘고, 애쓴 흔적을 지켜보면서 영효는 사랑스러운 며느리를 얻는구나 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색소폰 재즈의 선율도 감명 깊었습니디. 익산에서 해남으로 내려와 인터넷상으로 계약했던 동해 황토민박을 뒤로하고 갈두의 [산과 바다]에서 하루의 여정을 풀었습니다. 고향 바다! 너울도 없이 잔잔히 출렁이는 파도와 코끝에 와닿는 갯내음이 우릴 반기는 것 같고 진도 관매도 뒤로 떨어지는 낙조는 송호리 모래사장을 물들이고, 황혼의 여인들은 춤사위처럼 포즈를 취하며 물드는 해변의 주인공으로 지는 해를 ..

양귀비꽃

2015. 5. 18 화단에 핀 수국, 그 옆에 양귀비 두 송이 피웠드랬는데 사진에 담지 못했다. 오늘은 주황색 두송이가 피웠습니다. 꽃은 빨강, 노랑, 흰색, 주황 등 한 뿌리에서도 여러 색깔로 피어납니다. 꽃대가 하늘 하늘하고 가늘게 쭉 솟는데 꽃방이 봉긋하니 목이 긴 꽃대 끝에 매달려 불안 불안하니 가냘픕니다. 영남이가 양귀비 술을 가져와 모두들 한잔씩 하셨지요. 막걸리랑 양귀비 술, 그리고 그지없는 낙지와 생선회는 그림의 떡이면서 침샘을 자극하는 고역의 좌석이었습니다. 그러나 흐뭇해하는 모두가 너무 좋았습니다. 어느 땐가는 면역성이 강해지면 나도 여러분과 술잔을 부딪치겠지요. 밴드를 보느라 아침 운동도 나가지 않고 식사를 하러 내려오니 두 송이가 피어있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들뜬 여행의 여운을 뒤..

어떤 추억

2015. 1. 17 오산쪽 중앙 국민학교 못 가서 도로 옆 밭가에 국민학교 다니는 아이 둘을 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집 아주머니가 좀 유난스러워서 저녁밥만 먹으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는 타입이었는데, 달 밝은 여름밤! 모기장 붙여놓은 문살 사이로 달빛이 밀려와 방안은 적당히 어스름한데 희고 둥그스름한 몸뚱이가 가만있지 못하고 남정네의 위아래(머리, 다리)로 또는 배위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면서 상당한 시간을 유희한다. 마당가 키가 큰 빗지락대나무 뒤에서는 영어와 융이가 침을 꼴까닥 넘기면서 그 마지막의 클라이맥스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본다. 원래는 이 아주머니가 저녁밥만 먹으면 옷을 홀라당 벗고 빤스 한 장만 걸치고 밤을 맞아드리며 그네의 세계에 심취하여 빠져드는데 그놈의 여름이, 모기장이,..

동지

2014. 12. 22 오늘은 동지. 예부터 태양이 부활한다 하여 태양절로 불리기도 했으며, 태양 축제 기간의 절정인 25일은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되고 있습니다. 태양족인 우리 동이족은 동지를 작은설로도 여겼으며 동짓달을 자월로 불러 태음의 첫 시작 달로 삼은 적도 있습니다.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데 붉은색인 양의 기운으로 음귀를 물리치고 액운을 막아 준다고 믿어서 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현명하게도 팥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전에서는 동짓달에 초상이 나면 각 골목마다 팥죽을 쑤어 두레(품앗이)로 상가집의 문상객이나 운상꾼들에게 나누어 먹이던 기억이 납니다. 새벽에 눈발이 날리고 메섭고 차가운 바람이 삭막하게도 휘몰아쳤지만 연단 통근버스에서는 수 백명의 의사와 간호사, 병원..

1년

2014. 11. 11 간 장소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감사함과 생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긴다. 1년 전 이맘때. 간성혼수로 보름여의 기억이 전혀 없는 상태로 깨어났다가 그 이후 가끔은 무의식의 기억으로 떠오르는 풍경이나 사물, 또는 사람들이 있다면. 두산리의 10월 단풍과 모든 것이 노란 색깔 속의 병실과 긴 복도 이동하는 침대 그리고 휠체어 울성 거리는 말소리 반복되는 이름과 날짜와 장소의 간호사 질문. 손을 꽉 쥐며 말없이 바라만 보던 가영이 끝 간데 없이 나른하면서 기분 좋게 하던 노래들 온몸을 소독으로 닦으면서 눈시울을 붉히던 아내. 검붉은 공간 속에서 팔을 뻗어 온 힘을 다해 손바닥으로 막아내며 들어서기를 거부하던 알 수 없는 세계. 청아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던 큰누님의 다정한 목소리...

[스크랩] 흥 과 스타.

남이섬 여러 사람의 갈채를 받고 있는 은심 가우사이 봄날, 남이섬을 빠져 나올려고 선착장 부근의 화장실에 들렸을 때 귀에 익은 노래, 구창모의 가 라이브 밴드에 의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다수의 인파가 있었고 야외의 급조 된 무대 위에는 5명의 외국인 밴드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곡은 에서 로 이어 지면서 남미의 강열하고 정열적인 리듬으로 발걸음을 붙잡았으며 연주의 애잔한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의 노래가 그 위에 오버 랩 되어 나도 모르게 흥이 돋아 가던 길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낮으막한 무대의 앞가림은 가우사이 멤버들의 연주라고 소개글이 현수막에 쓰여 있었습니다. 언젠가 교보문고에 갔을 때 밀짚모자를 쓴 미소년의 환하게 웃고있는 그림이 가우사이라는 이름에서 떠 올랐습니..

수국 우물가에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냥 잎만 무성한 채로 봄을 보내고 어느 여름날 하얗게, 혹은 알록달록 송이송이 피어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땐 별반 흥미를 끌지 못했던 우물가 옆의 자줏빛 꽃무리가 지금은 이렇게 아름답게 떠 오릅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어쩌면 보지 못했던 까닭이겠지요. 수국! 그래서 작년에는, 형수님이 우물가에서 큰 채 토방 앞으로 옮겨놓은 수국 한 뿌리를 가져와 유리 창가에 심었습니다. 그래서 우물가의 그때처럼 지금 잎이 무성합니다. 아직은 꽃이 피지 않았어도 틈만 나면 쌀 뜸 물을 받았다가 물을 줍니다 건물 처마선 안이라 이슬을 맞지 못하니까요. 꽃이 피기를 기다립니다. 그때는 무심했던 관심 밖의 꽃이 이제는 기다려지네요. 다른 곳에서는 꽃이 폈을 겁니다. 여..

[스크랩] 또래.

그믐달이 뜨고 별이 돋는 밤하늘도 상고대 핀 잎 진 가지의 반짝임도 새벽으로 가는 잠 못 이루는 이 모습도 어쩌면 그대로 인 것을. 거리는 새로워지고 사람은 스치는데 그때를 기억하는 그날의 고만고만한 사람들을 또래라고 해야 하나. 또래들은 같은 시절을 알고 있어 같은 골목을 어깨동무하고 같은 노래를 목메어 부르던 그 시절을 또래들은 이처럼 그리워한다. 시위 떠난 화살처럼 깜박 이는 순간처럼 잠깐이면 가 버리는 푸른 잎의 계절과 하얀 밤의 한 해가 또래들은 놓을 수가 없고 보내기가 싫어 다 같이 기억하는 그날의 설날도 또래들은 이처럼 그리워한다. 골목에 한 주먹씩 놓아 액맥이 하던 붉은 황토흙도, 진자끝자, 진자 끌자 외쳐대던 가랑이 사이의 대나무도, 밤눈 어두워 밤길 돌며 액땜하던 부엉이 눈은 헐떡, 북..

[스크랩] 빗방울은 하나 둘씩 날리고.

가을비를 어른들은 도지기라 했다. 폭풍의 미친 빗줄기 광우. 광풍. 곡식은 봄에 싹을 틔워 비로소 세상을 보고 비와 구름을 만나 바람의 쓰다듬을 받으면서 강렬한 태양의 은혜를 입고 어둠의 이슬로 성장의 열매를 맺는다. 여름의 황홀한 시간은 가고 늑대의 질주처럼 고독한 달빛은 늪속의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순리가 따르고 자연은 위대해서 가을이면 결실을 맺어야 하건만 쭉정이는 뒤늦게 어기적 거리며 질서를 무시한다. 그래서 바람은 노하고 천둥은 때리며 비는 날린다. 신은 겁먹고 하늘을 우러러 살고자 하지만 인간은 영악해서 하늘에 맞선다. 맺지 못하고 익지 않으며 고개 숙이지 않는 천하의 모든 더딘 것들은 숙살지기의 무서리를 맞을 것이다 어른들은 그래서 도지기라 했다. 치우기의 붉은 광풍처럼 가을 들녘의 빗줄기는..